기륭 투쟁 1895일 헌정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 발간

20101106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충무로에서 배송된 사진집 박스를 센터에 쌓아놓고 사진집을 보고 있는 문재훈 소장, 최석희 선배, 이인섭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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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 투쟁 1895일 헌정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 인쇄 돌입!!!


20101103 서울 을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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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달력 프로젝트 - 기륭을 생각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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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달력 프로젝트 - 기륭을 생각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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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레인 점거 - 이윤엽

절박하다.

1800일을 지킨 농성장을 부수러 온 포크레인을 기륭노조 김소연 분회장과 송경동 시인이 온몸으로 막고 급기야 그 꼭대기에 올라섰다. 앉으면 불안하고 서면 고압선이 닿아 어쩔줄 모르는 그 위에서 낮에는 쪼그리고 밤에는 웅크리며 일주일 넘게 버티고 있다.

소변은 어떻게 볼 것이며 잠은 어떻게 자고 무엇을 씹어 삼켜야 반생이처럼 굳은 몸들이 펴질까? 맘이 아리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하다.

포크레인 아래 그들만큼 절박한하게 살면서도 말을 할 줄 모르고 말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포기한 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그 절박한 삶들의 목소리로 매일매일 온몸으로 외치고 또, 보여주고 있다. 

- 이윤엽(판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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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 장기수 박선애 (1927-2010.9.25)

20080826 경기도 파주. 박선애·순애 자매.


              어머니와 엄마의 꿈 ⓒ진보미디어 청춘

신념과 바꾼 고난의 80년… ‘이념 없는 나라’로 떠나다 [경향신문 2010.9.27]

ㆍ비전향 장기수 박선애씨 별세

“북에 있는 남편이 부인의 무덤에 술 한 잔이라도 건넬 수 있게 남북 정부가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고독하고 신산(辛酸)한 삶이었다. 여든 넷에 맞은 죽음 역시 그랬다. 비전향 장기수 박선애씨는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지 못한 채 지난 25일 눈을 감았다. 박씨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에 따라 북한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 윤희보씨(93)의 부인이다.
장례위원회는 남편 윤씨가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북한주민초청신청서를 26일 통일부에 제출했다. 남편이 아내의 혼이라도 위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통일부는 “곧 정부 입장을 장례위 측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씨와 윤씨는 빨치산 출신이다. 박씨는 1951년 1월 포로수용소에 끌려간 것을 시작으로 두 차례에 걸쳐 약 20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윤씨와 결혼한 것은 68년. 그러나 신혼의 애틋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75년 사회안전법이 시행되면서 전향서를 쓰지 않은 두 사람은 재수감됐다. 비전향 장기수
부부가 된 것이다. 마흔 넘어 외동딸 고희선씨(43)를 얻었지만 아이를 제 품에서 키우진 못했다. 희선씨는 역시 빨치산 출신인 이모 박순애씨 아래서 컸다. 윤씨가 아닌 고씨가 된 것은 이모부 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고인은 생전에 빨치산 생활을 구술하면서 “딸 혼자만 내려놨으니 얼마나 울었겠느냐. 내가
가슴 아픈 것은 말로 할 수 없다”고 술회했다. 부부는 나란히 재수감됐다가 아내가 79년, 남편이 89년 각각 출소했다. 떨어져 지낸 세월,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단 두 번이었다.

2000년 9월 비전향 장기수가 북송될 때 고인은 남쪽에 남기로 했다. 동생과 딸 때문이었다. 딸 고희선씨는 “어머니는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애틋해하는 마음은 늘 감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박씨는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빨치산 활동을 시작했다. 빨치산 내에선 과감히 성차별에 맞섰다. 두번째 출소한 뒤엔 범민련 서울시연합 부의장·고문, 전국여성연대 고문 등을 지냈다. 박씨는 최근 몇 년간 병환에 시달리다 지난달 말부터 경기 고양시의 동국대
일산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지난해 말엔 몸이 불편한 박선애·순애씨 자매를 돕기 위해 지인들이 후원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동국대 일산병원에 마련된 빈소는 딸 고희선씨가 지키고 있다. 순애씨는 거동이 불편한 탓에 빈소에 나오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장례위원회는 28일 오전 7시30분 병원에서
영결식을, 9시 임진각에서 노제를 치를 예정이다. 고인의 시신은 화장돼 파주 보광사 납골당에 안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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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로고

20100925 경북 예천 회룡포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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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구나

20100925 경북 예천 회룡포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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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망징'편

군주가 궁전과 누각과 정원과 연못을 같은 토목 건축을 좋아하고, 수레와 말, 의복과 기이한 물건 그밖에 오락물에 골몰하고, 그 때문에 백성들을 고달프게 하여 재정을 낭비하면 나라는 망한다.

군주가 자기 마음대로 포상하기를 좋아하고, 법규를 따르지 않으며, 말만 앞세우고 실용성을 따지지 않고 겉치레에만 골몰하여 전시효과만을 노리면 그 나라는 망한다.

군주가 억지를 부리며 심술궂고, 사람과 화목하지 못하며 충고를 배척하고, 남을 공격하기를 좋아하며, 국가를 돌보지 않고 경거망동하며, 더욱이 자신이 있다는 듯이 서두르는 나라는 망한다.

동맹국의 원조를 믿고, 이웃 나라를 가벼이 여기면 그러한 나라는 망한다.

군주가 법률을 왜곡하며 사사로운 일을 공적인 일처럼 처리하고, 법령을 함부로 변경하면서 수시로 호령을 내리면 그 나라는 망한다.

신하들이 공리공담을 쫓고, 대부의 자제들이 변론을 일삼으며, 상인들이 그 재물을 다른 나라에 쌓아놓고 백성들이 곤궁하면 나라는 망한다.

 군주가 성미가 급하며, 안정되지 못하고 무슨 일이나 성을 내며, 앞뒤를 가리지 못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한비자(韓非子)가 말한 나라가 망할 징조 47가지 내용 - 亡懲篇'(망징편)

기원전이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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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교사'라는 말 - 이오덕

그 어떤 이름난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이 먼저 새로운 말을 쓰면 다투어 그 말을 써서 자기도 그 유식층에 들아거 보이려고 하는 얼빠진 말글 쓰기의 흐름이 우리에게 있다. 이렇게 해서 새로 쓰게 되는 말은 죄다 일본이나 서양에서 들어온 말이다. '신토불이', '민초', '해프닝'…… 따위가 모두 이렇게 해서 유행된 말이다.

 - 이오덕, 『우리 말 살려쓰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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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쇳물 쓰지 마라

20100915 서울 청계광장.

그 쇳물 쓰지 마라   

광온(狂溫)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도 말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것이며

못을 만들지도 말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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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해요 을지연습?

20100809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앞.

함께하고 싶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지만, 궁금하니까 방법이나 알려주면 좋겠다. 어떻게 함께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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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개인전 '한강 하구'


○ 작가노트
 
나의 국가보안법 재판은 검찰의 안보론과 사진가의 예술론의 격돌의 장이었다. 검찰에게 나는 예술가를 위장한 간첩이었고, 새로운 예술론은 위험한 예술론이었으며, 창작의 자유는 안보위협요소였다.
21세기로 들어서기 직전 나는 나름대로의 미학관과 예술론을 정리하고 본격적인 사진작업에 들어섰다. 아름다움은 내게 다른 말로 ‘결’이다. 세상은 결로 존재한다. 바람은 바람결로, 물은 물결로, 숨은 숨결로 존재한다. 결을 발견하는 것은 세계의 숨어있는 구조를 발견하는 것이며 예술창작은 세계의 결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이 발견되는 것만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깨달았다. 우연한 만남의 결과든 고단한 노력의 결과든 ‘내’가 결을 만들고자 할 때 결이 비로소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창작뿐만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까지도 예술가의 몫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론과 실천, 창작의 삼위일체. ‘한강하구’는 그런 작업과정이 처음으로 일관되게 실현된 주제이다.
2000년, 강화도로 이사해서 한강하구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이 전시는 10년 동안의 작업성과인 셈이다. 한강하구에 대해 설레던 ‘예감’은 10년을 거치며 『정전협정의 틈, 유라시아로의 창,  한강하구』라는 책으로 출판되었고, ‘한강하구에 평화의 배 띄우기’라는 행사를 통해 남북의 국경하천이자 유라시아의 국제하천인 한강하구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간의 과정에서 사색했던 사진들을 전시하게 되니 그저 부끄럽다.
내게 사진은 90%의 이론과 9%의 실천과 1%의 영감으로 빚어진다. 그러나 1%를 얻기 위해 나머지 99%를 버려야할 순간을 거쳐야 사진은 비로소 즐거운 것이 된다. 아는 것은 행하는 것만 못하고 행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즐거움에 이르러 내안의 ‘결’과 세계의 ‘결’은 비로소 화해한다. 내가 내사진에 대해 거는 기대이다.

○ 기획노트

‘한강하구가 보고 싶었습니다.’

홍대 앞 문화의 거리에 새롭게 문을 연 ‘공간415’에서 개관 기념전으로 사진작가이자 평화 운동가인 이시우의 <한강하구>를 선보인다. 전시장에서는 좀체 볼 수 없었던 그의 주옥같은 작품 중 <한강하구>만을 따로 묶어낸 이번 전시는 책으로만 보아왔던 그의 작품들을 드디어 갤러리에서 생생히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전시에 앞서 작가는 이미 『정전협정의 틈, 유라시아로의 창 - 한강하구』(통일뉴스, 2008)를 두꺼운 책으로 펴냈었다. 이 책은 한강하구의 역사적, 사회문화적 배경을 광범위하게 서술한 독특한 저작물로 한강하구의 과거로부터 현재의 관할권 문제까지 자세히 살피고 있다. 한강하구는 정전협정 1조 5항에 의해 민간선박항행에 개방된 수역으로 그 위치는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오두산통일전망대부터 강화 끝 섬 말도까지의 수역을 말한다고 한다. 작가는 이곳에서 2000년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를 시작한 이래 유엔군 사령부도 인민군사령부도 아닌 민간인에 그 출입이 개방된 한강하구를 통일과 평화, 생명의 해방구로 인식하게 한다. 작가는 그동안 대인지뢰반대운동과 한강하구 배 띄우기 행사 등을 통해 정전체제의 문제점과 평화체제로의 당위성을 사진작품 활동과, 저술, 강연회를 통해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사진과 글로 평화의 감수성과 통일의 미학을 확산시켜준 이시우 작가는 실천하는 예술인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이번 전시에 선보일 30점의 사진작품은 ‘지금, 여기 한강하구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끌어안은’ 눈부신 ‘서정’으로 구성하였다. 그의 글이 맑고 깊은 서사라면, 그의 사진은 곱고 아름다운 한 편의 시요 음악이다. 앞서 언급한 바, 이시우 작가는 실천하는 작가이자 위대한 사상가이다.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완벽한 지식과 역사적 안목을 갖추려고 한다. 사진 한 장을 만들어내는 전 과정이 그야말로 수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탄생한 사진이 아름답고 서정적이니 놀라울 수밖에 없다. 대상, 풍경이 갖고 있는 제각각의 사연을 이시우만큼 간절한 아름다움으로 형상화한 작가는 드물다. 물론 이와 비슷한 사진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이시우작가의 사진은 ‘다르다’. 풍경을 바라보는 그의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57년이 되는 올 여름은 이시우 작가와 함께 ‘한강하구’를 따라 걸으며 그의 사진을 보고, 한강하구를 또 보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독립 큐레이터 최연하)

http://gonggan41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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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웃다

20100719 서울 묵동. 왜 웃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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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nesty International advertising

Amnesty International from Digital District™ VFX Post-Pro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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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ncy : TBWA
director : Pleix
production : Warm & Fuzzy
post-production : Digital Distr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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