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년 범국민대회




















20150418 서울광장-광화문광장.


[대통령령 즉각 폐기! 선체 인양 공식 선포! 
세월호 참사 1년 범국민대회 참가자 선언문]


우리는 모였다. 
304개의 세계를 물속에 버린 국가에 우리는 모였다. 2014년 4월 16일 돌이킬 수 없는 참사,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참사 1년이 되도록 국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고, 1년이 되는 날 공식 추모 행사조차 열지 않았으며, 가족들의 비통한 절규에 응답하지 않았다. 2015년 4월 16일 차마 추모조차 할 수 없었던 가족들의 곁에 우리는 모였다. 헌화 행렬조차 두려워 경찰을 앞세운 국가에, 기억과 행동을 약속하는 십만이 넘는 국민이 전국에서 모였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약속한다.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결코 돌아가지 않겠다.


인양을 결정하라. 
우리는 듣는다. 차갑고 어두운 바다 속에서 아홉 명의 실종자가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를 듣는다. 아직 세월호 속에 내 친구가, 내 아들이, 내 엄마가 있다고 말하는 죽은 자의 증언을 듣는다. 인양이 결정될 때까지, 우리는 듣고도 아무 대답을 해줄 수 없다. 그래서 촉구했다.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걸었고, 온국민이 인양 촉구 서명에 동참했으며, 국회가 인양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결정하지 않았다. 실종자를 가족 품으로 돌려주는 것은 이 사회에 인간성을 되돌리는 시작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대통령은 우리에게 필요 없다.


대통령령을 폐기하라. 
대통령은 진실보다 권력을 택했다. 600만 명이 넘는 국민의 서명으로 만들어낸 특별법을 시행령 따위로 무력화하려고 한다.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이 두려워 특별조사위원회의 독립성을 끝까지 훼손하려고 한다. 희생자에게 들려줄 죽음의 이유조차 고백하지 못하는 국가는 필요 없다. 일상으로 돌아가 가만히 있으라며, 가족들의 간절한 그리움을 내동댕이치는 국가는 필요 없다. 진실을 침몰시키는 자, 우리가 침몰시킬 것이다. 참사 이전의 사회로 돌아가려는 아집일 뿐인 대통령령, 우리 힘으로 멈출 것이다. 진실에 대한 우리의 권리, 우리의 책임은 오로지 책임져야 할 자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책임져라. 
진실은 이미 시작되었다. 감추려는 자, 숨기려는 자의 민낯이야말로 이 사회의 진실이다. 부정부패 척결을 말하는 뒤에서 가신들의 비리는 화려한 곰팡이처럼 번져있다. 안전한 사회를 부르짖는 뒤에서 능수능란한 혀들이 생명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고 있다. 국민의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 침묵을 뒤로 하고 대통령은 떠났다. 참사 1년이 되는 날 그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가족도 국민도 아니었고 여당의 대표였다. 한통속으로 감추고 숨기려는 자 모두 필요 없다. 우리는 진실과 정의를 향해 거침없이 나갈 것이다. 대통령령과 함께 버려지고 싶은 자들만이 그것을 붙들 것이다.


존엄을 선언하자. 
길은 이미 열려있다. 가족들이 묵묵히, 그리고 격렬히 그 길을 열어왔다. 참담한 고통과 애끓는 그리움, 격한 분노와 고요한 사랑으로 우리는 인간의 도리를 깨치고 있다. 참사 이후의 사회로 나아가는 우리의 푯대는 인간의 존엄이다. 오늘 우리가 잇는 인간띠는 대통령에 대한 항의일 뿐만 아니라 존엄을 함께 지킬 줄 아는 사회의 선언이다. 대통령령이 폐기될 때까지 세월호 참사 1주기는 끝나지 않는다. 존엄을 짓밟는 거짓과 모욕이 끝내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24일 민주노총 총파업과 함께 세상을 멈출 것이며 25일 범국민 집중행동으로 다시 모일 것이다. 추모조차 하지 못한 가족들의 곁에서 함께 애도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끝까지 가족과 함께 할 것이다.


실종자를 가족 품에 돌려달라!
세월호를 지금 당장 인양하라!
진상규명 방해하는 대통령령 폐기하라!
부패정권 진실은폐 대통령령 폐기하라!
책임질 줄 모르는 대통령은 필요없다!
국민의 힘으로 존엄을 선언하자!


2015년 4월 18일 

범국민대회 참가자 모두의 이름으로 선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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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



20140410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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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





20140225 서울광장. 국민총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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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




20130930 경기 마석가구공단. 송경동 시인, 심보선 시인,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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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선생님과 송경동 시인

 

20120616 서울 여의도. 쌍용차 함께 걷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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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이창근, 공지영

 

 

20120501 서울 대한문 옆 쌍용차 분향소 앞. 122번째 메이데이.

 

지하철로 들어섰다가 경동 선배 전화가 와서 다시 올라갔다. 이 사진 좀 찍어달라고...

 

“쌍용차는 또다른 도가니…23번째 희생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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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석형 3주기 송경동 시인

 

 

20120415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묘지.

 

천석형이 떠난 지 벌써 3년이 됐다. 기륭 투쟁이 일단락되고 복직을 얘기하고 있는데 형은 없다.

경동 선배는 시를 낭송할 때와 달리 조근조근 형에 대한 기억을 되짚는다.

삐쩍 마른 몸매에 헐렁한 옷. 모자 옆으로 더부룩하게 튀어나온 머리카락.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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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맞은 백기완 선생님

20120318 서울 세종문화회관 백기완 선생 팔순맞이 노나메게 잔치 한마당.

송경동 시인의 축시를 따라 읊으며 눈물을 흘리시는 백기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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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

20120318 서울 세종문화회관 백기완 선생 팔순맞이 노나메기 잔치 한마당.

다시 목발 신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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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희망버스, 우리 시대의 전태일들

지난 주 경동 선배와 정진우 실장 보석 석방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이런 행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울산 가느라 참석 못해 많이 아쉬웠지만, 전미영 작가님과 유아 선배 덕에 어머니 사진이나마 쓸 수 있어서 위안이 됐다.


“노동자의 어머님, 저희 싸움에 힘과 용기를”

이소선 묘역 찾은 김진숙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 시대의 전태일들, 이제야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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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고립되었다』 기륭 사진집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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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구본주예술상 시상식

20111221 서울 장충동 프레시안. 유치장의 송경동 선배 대신 상을 받은 박수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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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선배 산문집 출판기념회 및 후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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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상상력을 가두지 마라!


시인의 상상력을 가두지 마라! 시인의 양심을 구속하는 정부는 ‘나쁜 권력’이다!

- ‘희망버스’ 기획자 송경동 시인의 석방을 촉구하는 〈한국작가회의〉 성명서
 
 지난 18일 밤 부산지방법원은 한진중공업의 노사갈등과 관련해 ‘희망버스’ 행사를 기획하고 주도했다는 이유로 시인 송경동 씨에 대해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법방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등 다섯 가지 혐의를 적용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한국작가회의(이사장 구중서)는 시인 송경동 씨를 구속하는 정부, 곧 시인의 상상력을 억압하는 정부는 ‘나쁜 정부’일 수밖에 없으므로, 정부에 의한 그의 구속을 제대로 된 민주주의 하에서는 있을 수 없는 ‘문화폭압’으로 규정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한국작가회의는 시인 송경동 씨를 지금 당장 ‘무조건 석방하라’고 강력히 촉구한다. 시인의 양심과 상상력을 가두는 처사는 이른바 문화선진국을 자처하는 이 정권 스스로의 논리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다른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실질적인 침해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난 10여 년 동안은 양심과 상상력에 입각한 문인들의 행위가 정부의 실정법에 따라 구속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한국작가회의는 ‘희망버스’ 행사를 기획했다는 혐의로 시인 송경동 씨를 구속한 이 정권의 반(反)인권적 처사와 반(反)문화적 행태에 참담한 분노는 물론 참을 수 없는 연민을 금치 못한다. 레임덕의 상황에 직면해 저지르는 이 정권이 단말마적 비명에 어찌 우리가 분노와 여민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자리를 빌려 우리는 시인 송경동 씨가 지난 15일 오후 7시 25분경 부산 영도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이틀 동안 경찰의 조사에 임하고 있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집행했으니 이러한 사법당국의 처사를 법의 목적을 사회의 평화에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순수한 법 감정을 제멋대로 훼손한 매우 부당한 처사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제 발로 찾아간 시인 송경동 씨를 도주 우려 운운하며 구속하는 것은 그의 양심을 한낱 파렴치범으로 간주하려는 태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이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희망버스’ 행사와 함께 했던 깨어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피플 파워’를 아무런 개념 없이 불법으로 매도하는 옹졸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시인이란 누구인가.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위험으로부터 피하는커녕 오히려 위험에 처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신을 향해 기도하고 외치는 존재가 아닌가. 시인은 앵무새처럼 국익(國益)을 말하는 정부 및 사용자의 ‘나쁜 말’에 맞서 국익보다 더 소중한 한 사람의 ‘생명’과, 노동자들이 마음껏 노동할 수 있는 ‘자유’와,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평화’를 깨우고 노래하는 존재가 아닌가. 바로 이러한 점에서 ‘희망버스’ 행사는 시인 송경동 씨이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었던 시민참여의 한바탕 축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가리켜 그가 꿈꾸고 열망해온 ‘재미를 위한 혁명’의 한 사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이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더라도 시인 송경동 씨를 구속하는 일은 시인의 양심과 상상력이 연출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만든 일종의 ‘행위예술을 국가권력이 앞장서 훼손해버리는 일이지 않을 수 없다.

한진중공업의 해고노동자 출신 김진숙 부산민주노총 지도위원 등이 309일 간 고공농성을 한 행위는 세계 노동운동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엄청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시인 송경동 씨가 시인의 양심과 상상력으로 기획하고, ‘노동하기 좋은 나라’ 및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다수의 시민들이 참여해 만든 아름다운 연대에의 기적, 곧 ‘희망버스’ 행사 역시 세계 문화운동사에서 유례가 없는 엄청난 일이다. 하지만 정작 유래가 없는 엄청난 일은 김진숙 부산민주노총 지도위원에 의해 309일 간의 고공농성이 진행되는 동안 이 땅에서 살 권리를 박탈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아가 한진중공업 노사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한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약자에게 무례하고 무능한 이 정권의 진면목을 ‘희망버스’ 행사를 통해 여러 차례 적나라하게 목격을 한 바 있다. 물론 시인 송경동 씨 등의 노력에 의해 김진숙 지도위원을 비롯한 고공 농성자들이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무사히 내려온 일은 이미 국내외의 뜨거운 관심사가 되어 있지만 말이다.

이에 한국작가회의는 시인 송경동 씨의 구속을 더 나은 사회와 더 나은 문화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온 이 나라의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지니고 있는 양심과 상상력을 함부로 침해하고 간섭하는 ‘나쁜 권력’의 대표적인 문화검열 행위라고 규정한다. 어렵게 체결된 한진중공업 노사 간의 합의와, 그에 따른 화해의 정신을 단번에 부정해버리는 정부의 이러한 처사는 머잖아 우리사회 곳곳에 엄청난 갈등과 대립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이러한 면에서라도 한국작가회의는 시인 송경동 씨가 좀 더 빨리 그의 가족과 문학의 현장으로 복귀하기를 희망한다. 만일 즉각적인 석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시민들과 더불어, 그리고 국내외 저명한 문인들과 더불어 그의 즉각적인 석방을 위해 끝까지 연대하고 투쟁할 것임을 밝혀둔다.

오는 11월 22일(화)은 진작 시인 송경동 씨로 수상자가 결정된 [신동엽 창작상]의 시상식이 있는 날이다. 시인 송경동 씨는 시집 『꿀잠』,『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등의 시집을 통해 ‘시와 행동’이 일치하는 작품을 열정적으로 써온 이 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우리는 이날 시상식의 행사가 주인공이 없는 행사가 되지 않기를, 다시 말해 객(客)들의 잔치가 되지 않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이러한 이유에서라도 우리는 정부가 어떠한 조건이나 단서도 달지 말고 ‘지금 당장’ 시인 송경동 씨를 석방하라고 거듭 촉구한다.
 
2011년 11월 20일
(사)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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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우리는 언제 이겼을까

20111115 서울 민주노총 건물. 부산으로 출발하기 전.

정신없이 봄여름가을이 갔다. 생각해보니 단 하루도 일이 없는 날이 없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는 눈만 열면 눈물이 쏟아지던 일주일여가 있기도 했다.
이렇게 막막한 시간을 김진숙 선배와 박성호, 박영제, 정홍형, 그리고 단식 40여 일만에 실려내려와야 했던 신동순 조합원은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그 아래에서 하루하루 가슴을 태우며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힘들 때마다 그들과 희망의 버스를 지켜주는 승객 여러분들을 생각했다. 함께 일하며 몇 달 동안을 낮밤없이 피로감에 지치면서도 굳건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으려는 깔깔깔 벗들을 생각했다.
 
작년 이맘때엔 병원에 있었다. 기륭전자비정규 투쟁 당시 포크레인에서 떨어지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병원에 누워 있는데 구미 KEC와 현대자동차비정규직 투쟁 현장에서 두 분이 분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GM대우 비정규직들이 정문 아치에 오르고, 부산에서 김진숙 선배가 85호 크레인에 올랐다는 소식과 대우조선비정규직 강병재 씨가 고공철탑에 올랐다는 소식이 다시 들려왔다. 그때마다 이 시대에 대한 싸늘한 분노와 안타까움이 가슴을 저몄다.
 
특히 김진숙 선배가 오른 85호 크레인은 2003년 김주익 열사가 목을 매달고, 곽재규 열사가 도크에 떨어져 죽은 한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곳이었다. 그후 8년동안 방에 불을 때지 않고 살았다는 김진숙이 어떤 마음으로 그곳에 올라갔을까, 간담이 서늘했다. 무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재능과 쌍용, 콜트콜텍, 발레오, 유성, 전주버스도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85호 크레인 그곳은 그냥 단위사업장의 어느 한 곳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지난 서러운 역사가 고스란히 배인 곳이었다. 최소한의 노동자들의 자존심이 지켜져야 하는 곳이었다. 다시는 절망의 무덤이 되지 않고, 희망의 등대가 되어주어야 하는 곳이었다.
 
희망의 버스는 그 모든 분노와 안타까움이 모여 만들어졌다. 누구 몇 사람이 기획하고, 제안한 게 아니다. 실제 희망버스가 기획된 곳도 쌍용과 재능과 콜트콜텍 등의 농성장이었다. 연대에 목말라 본 우리라도 저 외로운 85호 크레인에 연대하자가 시작이었다. 실제 1차 희망의 버스의 주동력은 그간 그렇게 싸워왔던 현장의 동지들이었다. 기륭과 동희오토, GM대우, 홍대 등 청소노동자투쟁, 그리고 용산과 두리반 등에서 싸움을 함께 지키던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진정성이 희망의 버스의 엔진이었고, 주원료였다.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들이 참 많다.
희망의 버스는 깔깔깔이라는 유쾌한 형태를 띄었지만, 안으로는 수없이 많은 노동자민중의 눈물이 가득찬 눈물의 버스였다. 1차 당시 공장문을 나서는 우리에게 양말 하나씩을 나눠주던 조합원들과 가족들의 눈물, 3주만에 인권버스, 성소수자버스, 반값등록금버스, 교수학술, 문화예술인버스, 보건의료, 종교인, 촛불시민, 철거민 버스 등 실제로 전국에서 193대의 버스가 만들어지던 2차의 순간들, 하루 40km를 걸어내려가던 쌍용차 정리해고자들과 소금꽃 천리길의 사람들, 다시 쌍용차 가대위들이 한진 가대위 분들을 만나기 위해 출발시켰던 희망의 열차, 황금같은 휴가를 반납하고 몰려든 1만 2천여명의 사람들의 물결로 장관을 이루었던 3차, 걸어걸어 새벽까지 산복동 고개를 넘어가던 사람들, 4차 때 ‘모든 비정규직들의 행진’이 조직되던 과정, 그간 십수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안타깝게 고공농성에 들어가야 했던 노동자들의 100명의 연대, 그리고 이름없이 희망의 버스를 함께 지켜주었던 지역 희망의 버스의 승객들이 보여주었던 수많은 일들. 그 모든 이들의 뜨거움이 일순 한국사회의 지형을 바꿔나갔다. 모두가 모두에게 감동을 주며 함께 이겨왔던 지난 반년이었다.
 
물론 벽도 많이 느꼈다. 앞으로의 과제다.
재벌의 사설경비대가 되어 철통같이 영도를 지키던 경찰들의 차벽과 폭력을 쉽게 넘을 수 없었다. 정리해고 철회를 무슨 사회주의 운운하며 막아서던 이데올로기의 벽도 높았다.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라고, 훼방버스라고 공격하며, 희망버스의 운동이 한진이라는 단위사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악독한 재벌체재 전반에 대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전반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저항과 분노로 터져나오는 것을 막으려 했던 청와대와 보수수구 언론들의 벽도 완강했다. 재벌총수의 국회 출석은 있을 수 없다고 발악을 하던 전경련과 경총의 반사회적 저항도 넘어야 했다. 6.27 기만적인 노사협의서라는 합법의 울타리도 넘어야 했다. 무엇보다 지난 십수년 우리 내부를 좀먹어왔던 패배주의를 넘어야 했다.
 
결국 우리는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이 안전하게 이 평지로 내려올 수 있게 했다. 아니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 우리 모두의 미래를 조금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왔다. 감사하고 존경한다. 2차를 준비하던 때, 가장 크레인에 대한 탄압이 강경했을 때,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했다고 하던 크레인농성자 박성호의 전언을 들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를 악물던 때가 기억이 난다. 그들의 강고한 투쟁을 받아 우리가 예까지 함께 왔다. 희망의 버스는 그런 우리 모두의 공동운명체였다. 우리 모두가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함께 투쟁한 당사자들이었다. 그 모든 승객들 한 분 한 분이 진정한 우리 시대의 승자들이었다. 그 분들이 앞으로 더 나은 우리 사회를 열어가는 소중한 연대의 힘들이 될 것임을 믿는다.
 
잊지 말 것은 희망의 버스는 이제 막 출발한 새내기 버스라는 것이다. 십수년동안 자행된 수백만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와 900만 명에 이른 비정규직 노예노동 체재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사회적 연대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다시 19분이 죽어간 쌍차로 가야하는 것 아니겠냐고 하던 어떤 벗의 이야기처럼,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이 안전하게 우리 곁으로 내려오던 그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가족들에게서는 열아홉번째의 죽음이 발견되었다. 전화를 드린 문정현 신부님은 그 순간에도 강정에서 경찰들과 대치 중이라고 경황이 없다고 했다. 이 억울함을, 이 분노를, 이 참담함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최소한의 조직도 없어 이름없이 일상속에서 매일매일 짓밟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빼앗긴 노동과 삶의 고통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1400일을 싸우고도 다시 100일 결사투쟁을 결의했다는 재능교육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한을, 5년을 넘게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의 기타만들던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을, 다시 잘려나가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단 한순간도 희망의 버스가 질 것이라고, 수많은 김진숙들이 질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멈추지 말고 다시 함께 달려가자. 더 나은 사회는 가능하다. 이젠 서로가 서로에게 기획자들이 되어주자. 이곳으로 가자고, 저곳으로 가자고, 서로 먼저 제안해주고, 실천해 가자. 1%에 맞선 99%의 승리는 멀지 않고 우리는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지 말자. 우리는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꿈을 잃지 말자. 과거의 썩은 관념들과 잔해들로부터 탄압을 한번씩 더 받을 때마다 나의 우리의 영혼이 한층 더 맑아지고 밝아지는 일이라는 기쁨을 잃지 말자.
다시 한번 이 모든 과정에 함께 했던 백기완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이들께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이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힘이 하나 있다. 물대포도, 최류액도, 경찰의 차벽도, 온갖 허위 이데올로기와 어떤 구조적 벽들로도 그 눈부신 힘의 출현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다움을 실현하는 소박한 순간들이다. 끝내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권력도 명예도 아닌 이것뿐임을 기억한다. 희망의 버스의 어떤 구석 자리든 한 자리는 꼭 나의 자리여야 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 더 기운차게, 밝게, 뚜렷하게, 투철하게 미래를 위한 모든 이들의 투쟁에 함께 하겠다.
 
한 명 한 명이 밝은 빛이 되어 이 모든 과정 지켜내 준 나의 소중한 깔깔깔 벗들에게, 그리고 묵묵히 나를 다시 지켜준 관호와 수정에게 고맙다는 말을 내려놓는다.
자, 이제 다시 웃으며, 끝까지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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