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희망의 버스’를 타러 가요

20110615 희망의 버스 탄압 규탄 기자회견


공개 제안문 - 송경동 시인

 ‘2차 희망의 버스’를 타러 가요



지난 6월 11일 밤 12시 머나먼 부산 영도에서 촛불을 들었던, 가난한 우리는 다시 2차 ‘희망의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한국근현대사의 아픔과 절망의 상징인 저 85호 크레인 위에 있는 한 여성노동자를 구하러 갑니다.

‘당신이 희망입니다’라고 적혀진 양말 하나씩을 나눠주며, 우리가 떠난 뒤 다가 올 탄압과 고요가 두려워 서럽게 울던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의 아내들과 아이들을 구하러 갑니다.
십수년간 목 잘려나간 수백만 노동자들, 900만에 이른 이 참혹한 비정규직 시대를 구하러 갑니다. 그 아픔의 현장에서 두 어깨가 축 늘어진 우리들의 ‘소금꽃’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을 구하러 갑니다.
다시는 누구도 함부로 잘려 생의 벼랑에 서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갑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구하러 갑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돈만이 최고인 이 살벌한 착취와 경쟁의 시대를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평화롭고 평등하며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런 세상을 우리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갑니다.

이 버스는 모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에 반대하고, 그 누구의 삶이던 조금은 더 안전한 사회를 우리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만들자는 연대의 버스, 실천의 버스입니다. 왜 모두가 연대해서 생산하는 사회적 가치가 소수 자본가들의 금고로만 들어가야 하는지를 질문하고자 하는 버스입니다. 그래서 이 버스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염원하는 희망의 버스이기도 합니다. 누가 얼굴 내밀자고 가는 버스도 아니고, 누굴 또 시대는 변하지 않은 채 영웅으로 만들자고 가는 버스가 아닙니다.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워야 한다는 가장 단순한 진실들이 맑고 투명해지기를 바라는 버스입니다. 너무나 평화로운 버스이고, 너무나 소박한 버스이고, 너무나 아름다운 버스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차 희망의 버스 185대가 전국 각지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연인의 손을 잡고, 친구의 손을 잡고, 동지의 손을 잡고 출발하는 2011년 7월 9일은, 아마도 한국사회 운동의 역사상 중요한 날로, 우리가 잊지 못할 가장 아름다운 역사의 한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날은 80년 광주의 5.18과 87년 6월과 7,8,9를 잇는, 2008년 촛불광장을 잇는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그런 희망으로 다시 2차 희망의 버스 185대의 출발을 전 사회적으로 제안합니다. 6.11일 그 눈물겹고도 신나던 밤을 함께 했던 모든 날라리들께 제안합니다. 모든 지역의 숨은 양심들께 제안합니다. 광주에서, 순천에서, 전주에서, 수원에서, 평택에서, 하남에서 또 어디에서 1차 희망의 버스를 타주신 소중한 분들의 마음을 모아 제안합니다. 다른 세상으로 이제 우리 출발합시다. 이제 한진중공업의 저 소통부재의 낮은 담이 아니라, 행복에 겨운 소수들을 위해 평범한 다수가 고통의 바다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이 잘못된 장벽을 넘읍시다.

이번엔 185대입니다. 그날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7월 9일을 두고, 우리 모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합시다. 벌써 누구는 일주일마다 희망의 봉고, 희망의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고 합니다. 그날 김치 한 조각이 없어 맨밥을 먹던 설움을 없애고자 한 차 분량의 쌀과 김치를 보내겠다는 촛불 시민들이 계십니다. 사진가들은 부산 지역 작가들과 함께 한 달 동안 한진의 절망을 카메라에 담겠다고 합니다. 백기완 선생님과 박창수 열사 아버님 등 유가협 어르신들이 맨 첫 차를 타시겠다고 합니다. 이런 연대의 마음들이, 공동체의 마음들이 잡혀 갈 일이라면 1번으로 자신들을 내세워주시라고 합니다.

7월 9일 전까지 우리 모든 귀를 열고, 눈을 열고, 손을 내고, 발을 냅시다. 7월 9일 전에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고, 저 눈물겨운 여성노동자 김진숙이 살아 내려올 수 있게 합시다. 매일 계단을 내려가는 훈련을 한다는 저 눈에 피눈물이 아니라 환한 웃음을 돌려줍시다.

그가 정말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열사의 떠도는 혼들을 고이 안고 이 안전한 평지로 내려 올 수 있게 합시다. 6월 12일 우리를 배웅해주며 그 누구랄 것도 없이 펑펑 울던 그 가족들과 아이들의 눈물을 딱아 줍시다.

그렇게 모두가 눈물바람을 하며 떠나온 뒷날, 김진숙 선배가 트위터에 썼더군요.

“희망의 버스 한번만 더 와주면 저도 살아 내려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울지 맙시다. 더 이상 우리만 피눈물을 흘리지 맙시다. 더 이상 절망하지 맙시다.
그 시간에 조직합시다. 그 시간에 단 한 대의 버스라도 더 만듭시다. 누가 말을 걸어 올 거라고 기다리지 말고, 김진숙이 열 여덟 시절 했던 화진여객 버스 안내양처럼 내가 이 희망의 버스의 안내원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주십시오.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아름다운 소풍을 가는 길이라고 말해 주시고, 저들의 모든 비방과 왜곡을 넘어 진정한 평화마음의 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시오.

간곡히 호소합니다.
이 어두운 시대 절망의 벽을 넘으려면 내 마음을, 우리의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합니다. 그 열린 마음들이 전혀 다른 열린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라 믿어 봅니다.

* 이 공개 제안문은, 6월 15일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전체회의(민주노총, 인권단체, 종교단체, 문화단체, 사회단체, 학술단체 등 50여개 사회단체 참여) 결정과, 당일 오후 2시 기자회견 시 백기완 선생님을 비롯한 사회원로 선생님들, 그리고, 6.11일 함께 해주었던 서울과 지역의 희망버스 참가자 분들의 마음을 모아 작성되었습니다.


,

송경동 시인

20110612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가는 길.

시인.
시인의 탈을 쓴 전문시위꾼.
시 '너희는 고립되었다'를 지은 시인.
나와 기륭전자분회의 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의 기획자.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의 버스' 기획자.
내가 좋아하는 시인.
,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91 - 희망의 버스, 한진중공업지회 김진숙

20110611-12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지브크레인 아래.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오긴 왔군요. 이런 해방감들이 얼마만입니까.

8년전 김주익이 한 달 넘게 봉쇄된 공장이 마침내 뚫려 사람들이 이 85호 크레인 밑에 모이던 날 그 소 같은 사람이 울었습니다. 그랬던 사람을 우리는 끝내 못 지켰습니다.  

어제 용역들에게 공장문들이 차례차례 무너지는 걸 보면서 볼트 한가마니를 올렸습니다. 저 혼자 남게 되더라도 끝까지 싸울 생각이었습니다. 많이 보고 싶었고 애타게 기다린 만큼 만나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오작교가 되어 등허리가 다 벗겨지더라도 우리 조합원들과 여러분들 꼭 만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조합원들 많이 다치고 귀때기 새파란 용역아이들한테 내동댕이쳐지고 짓밟히는 걸 전 여기서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습니다. 6개월을 집에도 못가고 불면의 밤들을 술로 견디며 깨진 어항에서 흘러나온 금붕어처럼 숨을 헐떡거리던 저 사람들에게 우리가 외롭지 않음을 우리의 싸움이 정당한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조합원들 한번 봐주십시오. 평생 일한 직장에서 아무 잘못 없이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퇴거압력에 손해배상 가압류에 경찰서 몇 번씩 불려 다니고 가족들 성화까지 견뎌가며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저 지친 어깨에 가족들 생계를 걸머지고 밤엔 절망으로 쓰러지고 아침이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희망을 찾아 기를 쓰고 버텨온 사람들입니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가 목숨 던져 지켜낸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나를 버린다 해도 나는 저들을 버릴 수 없는 이유가 백 가지도 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우리 조합원들이 혁명적 투지로 무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키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6개월 전까지 살아왔던 삶을 지켜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저녁이면 땀 냄새 풍기며 집에 돌아가 새끼들 끼고 저녁 먹고 여러분들이 오늘까지 누려왔던 그 소박한 일상들을 지켜내고 싶은 것 뿐입니다.  

술만 먹으면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저 못나빠진 사람들. 가슴 속 맺힌 한을 이제 그만 풀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8년을 냉방에서 살았던 저의 죄책감도 이제는 좀 덜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이 85호 크레인을 생각하셨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조합원들을 기억해주십시오. 2003년 그 모질었던 장례투쟁의 와중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현서, 다림의 애비, 고지훈, 김갑렬을 기억해주십시오. 짤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함께 싸우는 최승철을 기억해주십시오. 말기 암으로 언제 운명하실지 모르는 아버지보다 동료를 지키기 위해 농성장을 지키는 박태준을 기억해주십시오. 비해고자임에도 이 크레인을 지키고 있는 한상철, 안형백을 기억해주십시오.  

정리해고로 무너지고 용역깡패에게 짓밟힌 저 사람들을... 조남호가 버리고, 언론이 버리고, 정치가 버린 저 사람들을 함께 지켜주십시오. 

백기완 선생님, 문정현 신부님, 박창수 동지 아버님, 박종철 동지 아버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을 만큼 뜨겁게 고마운 여러분. 제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비틀거릴 때마다 천수보살의 손으로 제 등을 받쳐주신 여러분. 꼭 이기겠습니다. 157일 아닌 1,570일을 견뎌서라도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 여기까지 왔던 그 마음 그대로, 아흔 아홉 번 쓰러져도 결코 무릎 꿇을 수 없었던 그 마음 그대로, 굳건히 지켜내겠습니다. 

기륭전자 동지들이 버텨왔듯이, 쌍차 동지들이, 유성 동지들이 버텨가고 있듯이, 그렇게 꿋꿋이 견뎌 나가겠습니다.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에게 감염된 인사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2011년 6월 12일 새벽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

파견미술은 주차공간에 보이지않는 투명자동차 / 새벽우물님

먼저,

평등한 삶을 위해 쓰린 삶을 마다하지 않고 앞장서서 싸우는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사람이 모여야 태어나고 자라나는 미술 : 파견미술

파견미술은 왜곡된 권력에 의해 소외되어 있는 현장 속으로 작가 스스로가 파견되는 게릴라적인 미술행동이다. 결과적으로 과정의 기록이미지들과 남겨진 기억의 형태로 존재하는 예술이며 파견미술가들에 의해 진행된다. 파견미술이란 단어는 2009년 부평GM대우 비정규투쟁농성장의 천막미술관 만들기 연대작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의미는 2006~7년 대추리, 2008년 티베트, 2008~10년 기륭, 2009~10년 용산, 등 연대의 현장에서 이루어진 파견미술가들의 미술행동을 소급하여 취하고 있다.




미술에 파견이라는 아이디어를 심어준 파견노동이란 일용직 노동자라고도 불리는 파견직 노동자들의 노동을 말한다.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고용보험조차 보장이 안되는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 정규직 아래 비정규, 또 그 아래 하청노동, 하청의 하청 마지막에 존재하는 것이 파견직 노동이다. 파견이란 본래 임무나 역할을 부여받고 수습이나 처리를 위해 보내짐을 뜻하는 군대 용어이다. 이는 단어의 태생 자체가 일상적으로 일반화되는 상황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 특정 부문에 한정된 의미로 사용됨을 알 수 있다.



파견미술가들은 구체화된 조직이나 지속적인 모임을 피하며 사안에 따라 주도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일회적인 명칭을 갖고 움직인다. (주도적이란 의미는 관리나 운영 등의 진행을 뜻하며 일회적 명칭이 사용된 예로는 '비정규직철폐 투쟁에 연대하는 미술인', '티벳을 생각하는 예술가', '용산참사와 함께하는 미술인', '청년전태일을 그리는 예술가' 등이 있다) 때로 미술 전공자가 아닌 구성원이 참여하게 되는 경우 전공자와 동등한 작가로서 활동을 한다. 파견미술가 소집의 가장 큰 특징은 구성원 모두가 작가이기에 '무엇을', '어떻게' 보다는 '언제', '어디서'가 구체적인 행동의 원인이 된다.
작가라는 존재 자체가 무엇을, 어떻게라는 영역을 이미 확보하고 있고 현장 상황이나 매 사안마다 결정권을 스스로 부여하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파견미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작가들 스스로 정리하여 답한 예가 있다. 2010년 용산참사 1주기를 추모하며 제작된 용산참사 추모 파견미술 헌정집 <끝나지 않는 전시>가 그것이다. 2009년 1월 20일 '여기사람이 있다' 걸개 출력을 시작으로 한 365일의 미술행동은 아무것도 아닌 미술이 '연대'라는 이름을 안고 어떻게 현장과 함께 태어나고 자라나는가를 적절히 보여준다. 용산 현장속에 미술은 무엇이 되려 하거나 무엇이 되고자 하지 않았고 오로지 같이 하고자 하는 연대의 가치를 통해 철거민들과 미술가들의 삶은 공생하였으며 결국엔 각자의 역할이 더욱 더 공고히 분리되어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파견미술은 보이지 않는 투명 자동차.

보이지 않게 주차되어 있는 차에 자발적으로 올라타

현장으로 향하는 파견미술가.

매순간의 섬세한 감동을 밟고 연대의 연료를 먹으며

누구든 결합되는 순간

눈에 보이는 생명력을 얻어 달린다.

오묘한 자연의 법칙과도 같이

과정의 흐름이 조금이라도 흩트러지는 순간

스스로 파견은 없다.


,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90 -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20110518 서울 종로 보신각.

무대에서 부를 노래를 준비하다가 오수영 사무국장의 몸짓에 유명자 지부장과 이현숙 조합원은 뒤로 넘어갈 지경.
,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89 - 시대의 모순, 노동자

20110601 서울 충정로 프랑스대사관 건너편.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연대촛불문화제.

잘 보면 이 시대의 모순이 모여 있다. 쌍용자동차, 재능교육, 발레오공조, 기륭전자, 유성기업...
,

송경동 시인

20110430 서울광장 옆 재능교육 앞. 제121주년 메이데이 전야 문화제.

그 나라는 아직 오지 않았다
- 제121주년 세계 메이데이 기념 축시

노동절이 아니라 메이데이다
메이데이는 영어가 아니다
그것은 만국노동자들의 새로운 언약
자본의 국경을 넘어, 제국의 침략을 넘어
만인이 자유롭고 평등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자고 피로 흘려 쓴
만국노동자들의 염원이 서려 있다

그렇다
백번 돌이켜보아도 그렇다
노동자에겐 노동자의 언어가 따로 있다
만국의 노동자에겐 만국의 공통 언어가 따로 있다
억양과 쓰여진 모양은 다르지만
자본의 언어와는 단 한방울도 섞일 수 없는
핏빛 적대의 언어가 따로 있다
눈부신 단결과 투쟁과 연대의 언어가 따로 있다

이런 만국노동자의 언어를
함부로 개량의 언어와 섞어 쓰지 말라
권력의 언어와 헷갈리지 말라
패배한 시대의 경험에 가두지 마라
우상의 얼굴 아래 가두지 마라
자기 시대의 한계에 가두지 마라
만국노동자들의 언어가 공통어가 될
그 세계는, 그 나라는, 그 국가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패배는 노동자의 명석한 언어가 아니다
꿈을 꾸지 않는 언어는 노동자의 명징한 언어가 아니다
실천하지 않는 언어는 노동자의 굳센 언어가 아니다

만국노동자의 언어에는
늘 희망이 서려 있다
만국노동자의 언어에는
늘 새로운 기쁨이 서려 있다
만국노동자의 언어에는
늘 승리의 확신이 깃들어 있다

보라
낡은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보라
폭압의 시대가 가고
평등평화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메이데이
121주년 만세!

# 노동절은 1957년 5월 22일 이승만의 지시로 대한노총이 만국 노동자의 날인 '메이데이'라는 명칭과 날짜(대한노총 설립일인 3월 10일로 옮김)를 빼앗고, 지은 굴종의 말. 우리들의 말이 아니다.

,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67 - GM대우 비정규직지회

20110117 인천 부평 청천동 GM대우 정문. 황호인·이준삼 조합원 고공농성 48일, 신현창 지회장 단식농성 29일차.

부평 GM대우 정문에 야수가 한 마리 살고 있다. 스물 아흐레 굶은 신현창 야수...
이 겨울에 근 한 달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신현창 지회장을 생각하면 밥이 잘 넘어가질 않는다.
맘에 항상 걸려 가려고 기를 쓰다 겨우 가서 봤다. 턱선이 V자가 됐다.
힘 빠진 모습 대신 웃어줘서 고마웠다. 기륭 조합원들처럼, 렌즈를 가까이 들이대니 웃는다. 왜 웃수?
,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66 - GM대우 비정규직지회

20110117 인천 부평 청천동 GM대우 정문. 황호인·이준삼 조합원 고공농성 48일, 신현창 지회장 단식농성 29일차.

영하 10℃. 생명줄이 올라간다.
,

<너희는 고립되었다> 기륭, 6년의 기록 국회 사진전


,
|  1  |  2  |  3  |  4  |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