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농성'에 해당되는 글 89건

  1.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22 - 쌍용차 김정욱, 이창근 고공농성 첫 날 2014.12.14
  2.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21 - 쌍용차 노동자 박일, 김승태 정년퇴임 2014.12.14
  3.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20 - 스타케미칼 2차 희망버스 2014.12.14
  4.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17 - 쌍용차 대법원 파기 환송 판결날 2014.12.14
  5. 우리는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16 -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 고공농성 돌입 2014.11.13
  6. 사회적 합의 파기는 범죄다! 2014.09.19
  7. 화가 신학철 2014.09.11
  8.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10 -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복투 대표 2014.09.10
  9.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07 - 유제선 쌍용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2014.08.28
  10.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06 -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복투 대표 고공농성 89일차 2014.08.24
  11.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00 - 이정훈 유성기업 영동지회장 고공농성 해제 2014.07.04
  12.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99 -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복투 대표 2014.06.23
  13.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98 - 구로역 광장 교통통제탑 1 2014.06.23
  14.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96 -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복투 대표 고공농성성 13일차 3 2014.06.19
  15.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95 - 서울여대 경비노동자 고공농성 2014.06.19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22 - 쌍용차 김정욱, 이창근 고공농성 첫 날







20141213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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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21 - 쌍용차 노동자 박일, 김승태 정년퇴임




20141206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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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20 - 스타케미칼 2차 희망버스







20141129 경북 칠곡 스타케미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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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17 - 쌍용차 대법원 파기 환송 판결날











20141113 서울 서초구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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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16 -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 고공농성 돌입




20141112 서울 중구. 씨앤앰(C&M) 협력업체 케이블 설치·수리 노동자 강성덕(35)씨와 임정균(38) 씨 고공농성 돌입.


또 고공농성…이번엔 서울 한복판 케이블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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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 파기는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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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신학철



20140823 경북 칠곡 스타케미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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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10 -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복투 대표




20140823 경북 칠곡 스타케미칼. 


굴뚝농성 100일
아침에 핀 무궁화꽃을 보며

[굴뚝일기-6]희망버스 편지 보며 흐르는 눈물


어제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 비가 계속 쏟아지는 오후, KBS 시사프로그램 ‘오늘을 보다’ 작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9월 10일 수요일 저녁 7시 30분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취재한다.

우리에겐 ‘공장’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공장은 나에게 청춘을 바친 곳이고 삶의 터전이다.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삶의 모든 것을 일깨워준 곳이다. 그리고 민주노조를 알게 해준 곳이다.

민주노조를 얘기하니까 옛날 기억이 떠오른다. 1995년 2명의 동료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재발 방지를 위한 노사 교섭에서 노조위원장이 사측의 관리자에게 뺨을 맞는 일이 벌어졌다. 협상이 중단됐고, 회사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996년 4월 총파업을 통해 민주노조를 지켜냈다.

1998년에는 노조위원장이 직권조인을 했다. 전 간부가 삭발을 하며 싸웠다. 3년 동안 천막생활을 한 끝에 노동조합 사무실을 얻었다. 청춘을 바쳐 지켜온 민주노조가 스타케미칼 김세권 자본과 어용노조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 노조를 다시 세우기 위해 굴뚝에 올랐다. 청춘을 바친 공장을 지키기 위해 굴뚝에 올랐다.

굴뚝농성 100일이 지났다. 굴뚝에 올라와 며칠이 지났을까. 닭백숙이 올라와 맛있게 먹었다. 남은 백숙이 아까워 다음 날 다시 먹었다. 그런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비상약이 없었다. 설사를 8번이나 해야 했다.

천막이 없었다. 회사와 경찰이 천막은커녕 핸드폰 충전기도 올려주지 않았다. 태풍이 오면 고스란히 비를 맞아야 했다. 천 쪼가리는 한방에 날아가 버렸다. 땡볕 더위가 내리쬐어도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몸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장모님의 암 발병 소식은 견디기 힘들었다. 해고자 복직 투쟁위원회 동지들이 생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소식은 마음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국에서 희망버스가 구미로 출발하기로 결정되고, 희망버스를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동지들이 힘을 얻고 표정이 밝아졌다. 우리와 처지와 비슷하거나 더 힘든 노동자들을 보면서, 이 싸움이 우리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투쟁임을 느끼면서 힘이 나기 시작했다.

희망버스를 통해 전해준 응원 글과 편지가 굴뚝으로 올라왔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힘들 때마다 한 편씩 꺼내 읽는다.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티셔츠가 다 젖기도 했다.

오늘 아침, 한 동지가 올려준 하와이 무궁화가 피었다. 비가 오는 데도 꽃망울이 활짝 피었다. “힘내라 차광호, 할 수 있다 차광호”라고 응원한다.

우리 해고자들도 저렇게 활짝 웃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동료들 가정에도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다. 이 싸움을 이겨서 모든 노동자들이 희망을 갖고 평등한 세상으로 같이 갔으면 좋겠다.

추석이다. 모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이겨서 가족과 함께하는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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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07 - 유제선 쌍용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20140823 경북 칠곡 스타케미칼 앞. 희망버스 사회자 유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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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06 -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복투 대표 고공농성 89일차




20140824 경북 칠곡 스타케미칼.


20년 동지이자 친구, 광호를 생각하며..
(스타케미칼 해복투 박성호)

오늘 희망버스가 온다. 
45m 굴뚝 위 89일 째 홀로 버텨낸 광호를 보기위해, 전국에서 동지들이 마음모아 버스타고, 비행기타고, 봉고타고.. 구미온다.

한국합섬 만5년, 먹튀자본 스타케미칼 1년8개월, 멈춰진 공장으로.. 
구조조정으로.. 파산, 청산, 해고, 다시 청산투쟁..

지긋지긋하련만 광호는 올라갔다. 
철거막고, 어용이 내팽게친 민주노조와 일터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식어버린 굴뚝위 콘크리트 난간에 둥지를 틀었다.

매도 먹이를 구할 때 땅을 밟는다.
광호는 내려 오지 않는다. 
땅을 밟지 않는다.
승리 할 때 까지 내려오지 않겠단다. 미련한줄.. 고집센줄 알았지만..
어쩔 방법이 없다. 
그저 바라 볼 수 밖에..

8월, 더위와 열기를 걱정해야 하는데 폭우와 비바람을.. 추위를 걱정해야 했다. 
앞선 태풍에 찢어진 천막을 스스로 겉고, 이틀밤낮 비를 맞았다. 
그런 광호가 미웠고, 내가 미웠다. 
그 뒤로도 폭우는 이어졌다.
무력감에 시달렸다.

오늘밤 광호는 또 잠을 설칠것이다. 
비도 오지 않는다. 
바람도 잠들었다. 
늦게나마 텐트도 올리고, 침상도 올렸다. 
새 침낭과 여벌 옷, 책도 올렸다.

그런데도 이밤 그는 잠을 설칠것이다. 
설램과 희망으로..
소중한 마음과 바램을 가득 싣고..
버스타고, 비행기타고, 봉고타고 올 동지들을 생각하며.. 

곧 새벽이 밝아온다.
희망이 온다!!

"내가 차광호다! 먹튀자본 박살내고! 현장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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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00 - 이정훈 유성기업 영동지회장 고공농성 해제



20140628 충북 옥천. 고공농성 259일차.


‘우리’와 이어져 있는 유성 투쟁


여느 싸움과 마찬가지로, 2011년 5월 18일 무렵 알려지기 시작한 유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여러 굵직한 싸움들 속에 있었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 올라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지켜내려고 그해 6월 ‘희망버스’가 맨 처음 출발하기 전부터 혼자 혹은 파견미술팀으로 크레인에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던 때였다. 쌍용자동차는 어떤가. 새해가 되자마자 열두 번째 죽음을 시작으로 계속 죽음이 이어지는 바람에 그 죽음의 행렬을 끊기 위해 발버둥 치던 때였다.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이 먹튀자본에 맞서 상경해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던 때였고,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들은 집단 삭발 뒤 1,200일이 넘도록 싸우고 있던 때였다. 2005년부터 사진으로 담던 기륭전자분회 노동자들도 여전히 다른 투쟁사업장들과 연대하며 싸우고 있었고, 지금 주목 받고 있는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도 거대자본에 맞서 힘겹지만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 밖에 가보지 않은 수많은 곳에서 정리해고 문제, 비정규직 문제, 온갖 사회문제들이 넘쳐나던 때 유성 싸움이 하나 더 생겼다. 


마음과는 달리 모든 현장을 가볼 수는 없다. 모든 현장을 가보고 싶은 것도 아니다. 5월 18일의 용역폭력이 터지고 며칠 뒤 아산의 유성기업에 처음 가보긴 했지만, 그 뒤로 좀처럼 갈 틈을 내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멀리서 바라보던 중 쌍용차 결의대회에 참석했다가 억지로 다시 들르게 된 것은 홍종인 지회장의 고공농성 때문이었다.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데 고공농성만한 것은 별로 없다. 현장의 사진들을 몇 년 찍다가 돌아보니 어느새 온갖 고공농성 사진이 쌓인 것을 문득 생각하게 된 뒤부터 이 마음 불편한 사진들은 그리고 현장들은 챙길 수 있는 대로 챙겨보자는 심정으로 찍었고 유성 역시 마찬가지 현장이 되어 있었다. 홍종인 지회장이 151일 만에 2013년 3월 20일 굴다리에서 내려오고 반 년 만에 다시 충북 영동공장 이정훈 지회장과 옥천의 광고탑 고공농성에 돌입했을 때 찾아갔던 것도 그것이 다른 투쟁이 아닌 고공농성이기 때문이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고공농성이 아니었으면 옥천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서울의 사진쟁이 조차 오게끔 만들기 때문에 고공농성을 하는 것이 아닐까. 자본에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모르겠으나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졸아붙게 만드는 데는 효과적인 방법임이 분명하다.


누군가 하늘로 오르면 생존을 위해 이어지는 ‘생명줄’의 모습에도 관심이 가고, 끼니를 마련하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올라간 이들이 외롭지 않게 뭔가를 끊임없이 조직하며 노심초사하는 땅의 사람들에도 관심이 가고, 그러다가 하늘 아래를 지키며 한뎃잠을 자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관심이 가는 것이 고공농성이다. 반 년 만에 두 번이나 하늘로 오른 곳이 아니었다면 유성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고공농성이 아니었어도 결국 유성에 갔을 것이다.

한진중공업에 희망버스가 다녀간 여름, 한진 노동자들의 가족들을 만나 서로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출발한 ‘희망열차’에서 쌍용차 가족들과 더불어 유성 가족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2013년 5월 10일 송전탑 고공농성을 벌이다 171일 만에 내려온 쌍용차 해고자들을 맞이하는 인파 속에서 자신도 비좁은 굴다리 농성장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다 건강 악화로 내려온 홍종인 지회장이 목발을 짚고 서 있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무덥던 여름날 밤, 쌍용차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차려진 대한문 앞 한쪽에서 올빼미가 그려진 단체복을 입고 공동 투쟁하는 유성 노동자들을 봤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문제는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구술사를 엮은 책 『밀양을 살다』에서 단장면 용회마을의 구미현 님도 이렇게 말한다.

“내 혼자 무심히 살 수는 없구나. 사회의 끈은 어떻게든 엮여서 이 송전탑 줄을 따라서 내한테 또 따라왔어요. 송전탑 문제가 어디 이 전기 한 가지 문제입니까. 모든 사회문제가 완전히 종합돼서 나타내지는 거 아닙니까.”

‘사회적 합의’ 전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던 기륭전자분회의 농성장 앞에 있으면 경북 구미의 한국합섬, 코오롱 노동자들을, 전남 순천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인천의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콜트콜텍 해고자들을, 강원도 옥계의 라파즈-한라 노동자들을, 울산·전주·아산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경기도 화성의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을, 하이텍알씨디 노동자들을, 주연테크 노동자들을, 철거민과 노점상들을, 코레일 승무원들을, 학습지 노동자들을, 종교인들을, 학생들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연대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까닭이 구미현 님의 말 속에 담겨 있다. ‘희망’이란 이름을 붙인 버스, 열차, 여객선, 비행기가 한진중공업으로 강정으로 밀양으로 유성으로 떠났던 까닭도 여기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유성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지 않았다면 가보지 않았을 테지만, 동시에 다른 어떤 방식의 투쟁을 했든지 간에 그것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싸우는 우리의 문제와 이어져 있다면 함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정훈 영동지회장이 240일이 넘도록 옥천 광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했건만 하늘로 오른 사람들이 발 디딘 곳만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이 불편함이라니... 건강하고 당당하게 내려오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기를 바랄 뿐.


『우리, 노동자로 살아가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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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99 -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복투 대표


20140612 경북 칠곡. 고공농성 17일차.


20년 청춘을 바친 공장과 기계

차광호의 굴뚝일기(1)

 

한여름 땡볕 더위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아침부터 햇빛이 강열하게 굴뚝을 비친다. 45m 굴뚝에 올라온 지 24일, 적응이 될 만도 한데 잠을 제대로 못 이룬다. 몸을 많이 상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하게 운동을 한다.

 

굴뚝의 하루는 길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느리게 흘러간다. 아침저녁으로 조합원들과 함께 하는 집회시간, 멀리서 찾아온 동지들을 내려다보며 짧게 하는 통화 시간과 식사시간을 빼면 멍하니 앉아있을 때가 많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책을 들어보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굴뚝에서 바라보는 구미의 풍경이 새롭다.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서 보이는 산 밑이 내가 태어난 곳이다. 스물다섯에 스타케미칼의 전신인 한국합섬에 들어와 20년이 넘게 지났으니 청춘을 꼬박 이 공장에 보냈다.

 

한국합섬 입사할 때도 이렇게 더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구미공단은 광고판, 전봇대 할 것 없이 붙일 수 있는 곳은 모두 구인 광고로 도배되던 시절이다. 지금의 구미는 예전과 완전히 바뀌어 일자리 구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나오는 일자리는 여지없이 비정규직에 최저임금을 받고 12시간 맞교대하는 나쁜 일자리 뿐이다.

 

스물다섯 시절 구미의 여러 섬유회사들에 입사원서를 냈다. 친구들과 2박 3일을 일정으로 동해안 여행을 갔다가 차가 많이 막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반바지에 샌들을 신은 채로 면접을 봐야 했다. 그랬는데도 출근하라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고, 고민 끝에 여성노동자가 많은 한국합섬으로 결정했다.

 

한국합섬이 잘 나갈 때였다. 한국합섬 1공장에 입사해 공정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하루는 현장에서 고함소리가 나고 난리가 났다. 알고 보니 2공장 가동을 위해 전출을 해야 하는데 반장이 일방적으로 사람을 지목해서 보내려는 것 때문이었다. 선배들이 중재에 나섰고 결국은 내가 2공장으로 전출가는 것으로 현장은 조용해졌다.

 

얼마 있다가 2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다. 조건이 안 맞는지 몇날며칠을 일을 해도 정상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 툭하면 타부서에 지원을 나가서 가서 상노동을 한 달 가량 해야 했다. 그제서야 폴리에스텔 원사가 나왔다.

 

새로 들어온 후배들과 신나게 일을 하고 있는데, 노동조합 대의원을 맡아 달라는 섭외가 들어 왔다. 노동조합을 전혀 몰랐지만 선후배가 같이 한다는 것과 바른말은 참지 못하는 성격에 승낙하고 노조 대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렇게 시작한 한국합섬 입사와 노동조합 입문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할 줄이야 꿈에도 몰랐던 젊은 나이였다.

 

나와 동료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회사는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회사는 경쟁력 있는 특수섬유를 개발하는 일은 소홀히 했고, 원사의 대량생산에만 매달렸다. 잘 나가던 회사가 경쟁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2004년 금강화섬에 이어 2007년 한국합섬이 폐업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는 일자리를 잃었다.

 

다행히 스타케미칼이 회사를 인수했다. 스타케미칼 김세권 사장은 900억이 넘는 공장을 399억에 인수하고 공장을 돌렸다. 그런데 2년 만에 회사가 어렵다며 회사를 폐업했다. 회사는 기계설비를 팔아 300억 원 이상을 챙겼고, 고철과 전선 매각대금 200여억원을 챙기려 하고 있다. 그러고도 400억 가량의 공장 부지는 그대로 남아있다.

 

나와 동료들의 20년 청춘과 피땀이 배어있는 공장을 지키기 위해 굴뚝에 올랐다. 하루하루가 힘든 시간들이지만 버틸 것이다. 돈이 제일인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 존중받고 노동이 대우받는 세상은 언제쯤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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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98 - 구로역 광장 교통통제탑



20080526 서울 구로역 광장.

20140620 서울 구로역 광장.


2008년 기륭전자분회 윤종희 조합원이 14일 동안 올랐던 구로역 광장 교통통제탑.
'사건' 뒤 그가 매달렸던 중간 난간과 사다리를 없애버렸다. 
가끔 지나가다가, 언제 저걸 다시 찍나 노려만 보다가 6년만에..
게으르다, 게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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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96 -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복투 대표 고공농성성 13일차





20140608 경북 칠곡. 


스타케미칼에서 해고된 지 1년 5개월째입니다. 
싸우고 싶어도 그놈의 정이 무엇인지, 자본가 싸우기는커녕 어용과도 한번 제대로 싸워보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한국합섬 폐업 5년 투쟁때는 이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보다도 훨씬 어렵고 힘들었지만, 우리는 하나 되어 자본에 맞섰고, 싸워서 이긴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타케미칼 김세권이란 작자는 폐업공포를 가진 노동자들을 이용해 노노분열을 획책했고, 자본의 앞잡이가 된 어용지회는 조합원의 고용과 권리를 지키기는 고사하고 우리 투쟁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노동자는 자본의 하수인이나 개가 아닙니다.
똑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평등하고 서로를 위하며 사는 것이 기본인데...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고,노동자로 용서할수가 없습니다.
스타해복투는 자본의 일방적 파업으로 인한 청산을 묵과할 수 없습니다. 스타케미칼 김세권은 우리의 고용을 책임져야 합니다. 고용문제 해결없이는 투쟁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고공농성에 나섰습니다.
힘차게 싸우겠습니다.
투쟁!

금속노조 스타케미칼지회 해고자복투직투쟁위원회 차광호 대표



스타케미칼 해고자, 분할매각 중단 요구하며 45m 굴뚝 농성 돌입

노조, 고용승계 포기한 채 합의서 작성...사측에 분할매각 '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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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95 - 서울여대 경비노동자 고공농성


20140516 서울 노원구. 천막농성 32일, 지붕농성 4일차.


서울여대 경비노동자 정리해고투쟁 합의


정리해고된 조합원중 2명 7월 1일부 복직 등 고용보장방안 합의
통합경비시스템 도입에 따른 ‘안전캠퍼스 만들기 협약’도 체결

1. 정론보도에 애쓰시는 기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2. 통합경비시스템 도입후 경비노동자 40%를 정리해고하여 극한 갈등을 겪어왔던 서울여대에서 노사간 고용보장방안 등을 합의, 사태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또한 노사는 ‘안전캠퍼스 만들기 협약’을 체결, 통합경비시스템 운영의 실태를 점검하고 미비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공동으로 노력할 것을 합의하였습니다.

3. 정리해고된 조합원들의 고용과 관련, 5월 30일 노사는 서울여대 사무처장실에서 학교측 관계자의 입회하에 △1명은 6월 15일부 타사업장 전환배치 △1명은 7월 1일부 서울여대 우편업무 담당으로 취업 △1명은 7월 1일부 서울여대 미화직으로 취업 등에 합의하였습니다. 또한 서울여대 경비인력중 결원이 생기거나 신규충원 수요가 발생하였을 경우 정리해고된 조합원들을 우선채용하기로 하였습니다.

4. 또한 노사는 ‘안전캠퍼스 만들기 협약’을 통해 “서울여자대학교 통합경비시스템 도입과 관련, 시스템의 안정적 운영을 통해 안전한 학교, 개인정보 등 인권이 보장되는 캠퍼스를 만들기 위하여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실태를 점검하고 미비점을 보완하도록 노력한다”는데 합의하였습니다. 

5. 이번 합의는 사측에서 지난 3월 24일 경비노동자 전원에게 해고예고통보서를 보낸뒤, 4월 30일 10명의 경비노동자를 하고한지 한달여만의 일입니다. 노동조합은 이같은 정리해고에 맞서 지난 4월 15일 서울여대내 50주년기념관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하였으며, 지난 13일부터는 해고된 경비노동자들이 서울여대 정문경비실 지붕에 천막을 치고 농성투쟁을 벌여왔습니다. 이번 합의에 따라 노동조합은 5월 31일 오전 9시 30분 전체 조합원들이 모인 가운데 해단식을 열고 천막농성을 해제하였습니다.

6. 노동조합은 이번 합의가 부당하게 해고된 경비노동자 전원의 원직복직이라는 최초의 요구안보다상당히 부족한 수준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장기간의 투쟁으로 인하여 조합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물론이고 학생 및 학내 구성원들의 상처가 더 이상 깊어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고심 끝에 회사측과 합의하였습니다. 결코 만족스러운 합의내용은 아니지만 노동조합은 이후에도 해고된 조합원들의 복직 실현과 안전한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노동조합의 투쟁에 적극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셨던 서울여대 학생여러분과 아낌없이 연대해 주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2014년 5월 31일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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