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193 - 김정우 쌍용차지부장
20120804 경기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앞.
20120808 서울 여의도 국회 앞.
20120810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602호 박근혜 의원실 앞.
20120810 서울 여의도 박근혜 캠프 앞.
20120804 경기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앞.
20120808 서울 여의도 국회 앞.
20120810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602호 박근혜 의원실 앞.
20120810 서울 여의도 박근혜 캠프 앞.
20120804 경기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앞.
한상균 전 지부장의 출소를 기다리며 77일 옥쇄파업 당시 이정아 가족대책위 대표가 읽는 편지글을 듣고 있는 남편 고동민 조합원.
20120810 서울 여의도 박근혜 캠프 앞. 촛불문화제 사회를 보다.
20120803 서울 대한문 앞 분향소.
20120804 경기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앞.
20120808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
20120810 서울 여의도 박근혜 캠프 아래.
20120803 서울 대한문 앞.
20120804 경기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앞.
20120806 서울 대한문 앞 분향소 뒤.
20120810 서울 여의도 박근혜 캠프 앞.
20120810-11 인천 부평 콜트공장 안.
20120803 서울 대한문 앞. 마지막 <톡톡톡> 음향을 맡고 있다.
20120803 서울 대한문 옆 분향소 앞.
정비지회가 생계수단으로 운영하던 한성카센터를 정리하고 농성장으로 돌아온 조승형 조합원.
20120803 서울 대한문 앞.
20120804 경기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앞.
일이 형님은 한결같으시다.
20120804 경기 화성직업훈련교도소 앞,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
20120806 서울 대한문 옆 분향소 앞.
안에서 볼 수 없었던 달이 차서 기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해 여름 도장 옥상에서도 저 달을 보면서 우리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심정들을 담고자 했었습니다. 순간순간 동지들을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시간들이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동지들의 생존권을 지켜내지 못한 것으로 징역을 살아야 한다면 평생 동안이라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MB정권의 노동자 말살 정책으로 인해서 쌍용차가 희생양이 되는 과정으로 인한 시간은 참으로 길기만 했습니다. 순간순간 체념하고 좌절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희망은 우리의 나아갈 길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많은 동지들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스물 두 장의 만장을 벽에 붙여놓다가 나오는 길에 가슴 깊이 켜켜이 쌓아서 나왔습니다. 무슨 말을 먼저 드려야 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소중한 삶을 마감해야 되는 이런 현실들은 이제는 끝내야 합니다. 그들이 지금도 약속을 어기는 것은 경영을 합리화하고 돈 몇 푼 절약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본의 말을 듣지 않으면 노동자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고자 하는 너희들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잔혹하게 보여주려는 대한민국 자본의 천박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걸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속에서 함께 희망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동지 여러분, 함께 그 길을 당차게 걸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804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
한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했던 에스제이엠의 용역 컨택터스. 앳된 얼굴들이 보였다. 이게 나라 맞나?
20120725 인천 부평구 갈산동 콜트공장.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투쟁 2,000일 주간의 마지막 날.
20120723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20060209 서울 가산동 기륭전자 앞.
6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노동자들이 살만한 곳은 아니었다. 텅 빈 공장 어딘가에서 선전용으로 기타모형을 재단했을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떠올려 본다. 그 기타모형에 색칠을 하고 2,000일을 맞이하는 기자회견에서 품에 안고 선 누군가를 보며 6년 전, 기륭전자 공장 앞에서 집회를 준비하며 밥그릇을 품에 안았던 노동자를 떠올려 본다. 6년 동안 우리는 어디로 갔던 것일까. 기륭 1,895일과 콜트콜텍 2,000일. 너무 폭력적인 일 아닌가...
20120723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반갑습니다. 저는 콜텍지회 지회장 이인근이라고 합니다. 저희 콜트콜텍은 전기기타와 통기타를 생산하는 그러한 기업입니다. 이러한 기업이 2007년 4월 불현듯 국내 공장을 모두 다 페쇄시켜 버렸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이윤을 더욱 더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국내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을 다 길거리로 내몰고 해외에 공장을 짓고 그곳으로 모든 물량을 빼낸 후에 긴박한 경영 상의 이유라며 국내 공장을 폐쇄시켜 버렸습니다. 콜트악기와 콜텍은 매년 백 억 이상의 단기 순이익을 내는 그러한 알짜기업입니다. 부채비율 역시 30% 밑 하향수준으로 유지되며 2001년에는 월간 조선에서 알짜기업 50선에 든 그러한 기업입니다. 또한 콜트라는 브랜드는 세계 유수 브랜드와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러한 국내 토종 브랜드입니다. 그러한 토종 브랜드가 이제 국내 공장을 모두 폐쇄시키고 해외에서 기타를 만들며 국내에 있는 노동자들은 이천 일이라는 그 긴 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과연 이 노동자들이 무엇을 잘못을 했습니까? 이 노동자들은 지난 십 년, 이십 년 회사의 발전만을 위해서 내 몸 아끼지 않고 나무 먼지와 유기용제 냄새 속에서 열심히 일해 왔던 그러한 노동자들입니다. 이러한 노동자들이 그 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투쟁을 시작한 지 이제 오늘로서 꼭 이천 일이 되는 그러한 날입니다. 이 이천 일 동안 저희들은 한강 양화대교 남단에 있는 송전탑에서 30여 일 동안 고공단식농성을 진행하며 이 문제를 하루속히 해결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콜트콜텍의 박영호 대표이사는 이러한 노동자들의 외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모르쇠로 일관해 왔습니다. 그리고 여섯 번의 해외원정투쟁을 진행을 했습니다. 이 해외원정투쟁 과정 속에서 RATM의 탐 모렐로는 "기타는 착취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며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이렇듯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지금 이 시간도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그러한 굳은 의지와 이 투쟁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과 그 믿음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앞으로 저희들의 투쟁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투쟁 반드시 승리해서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그러한 기타를 기필코 다시 만들어 내겠습니다. 저희 콜트콜텍 투쟁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러한 동지들과 함께 힘차게 투쟁해서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723 서울 대한문 옆 쌍용차 분향소 앞.
20120723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