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엽_타인의 전시 준비







20140905 서울 종로 견지동 아라아트센터. 제4회 구본주 예술상 / 구본주의 친구들 전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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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보라마을의 파견미술팀











20131130 경남 밀양 산외면 보라마을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2011450401&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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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66 - 박성호 한진중공업지회 지회장


20131105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가톨릭회관에서 밀양 희망버스 기자회견이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그는 한진중공업지회의 지회장이 되어 있었다.
한진 희망버스가 출발하기 한 달 쯤 전 처음 만나고 그 뒤로 마주친 그의 모습이 떠오르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내가 아는 지회장, 지부장, 분회장 이런 '장'들의 어깨는 얼마나 무거울까 하는 가볍지 않은 생각이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기자회견 뒤 유흥희 기륭분회장과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박성호 한진중공업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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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영 민예총 사무총장



20130604 서울 시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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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농성정원 만들기 - 이윤엽, 나규환,신유아,전미영,배인석

 

 

 

 

 

 

 

 

 

20130310 서울 대한문 옆 분향소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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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아닌가 싶은 파견미술 판화가 이윤엽






20120601 민예총 룰루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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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미술가 모임 - 학고재,에무,룰루랄라















20120601 학고재, 에무, 민예총 룰루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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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미술씨>展

 

나는 파견미술가?

 

http://blog.daum.net/emuspace/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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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엽 작가

20110727 충남 아산 유성기업 앞.

파견미술팀 이윤엽 작가와 홤께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비닐하우스 숙소 지붕에 여름을 시원하게 날 미술작업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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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91 - 희망의 버스, 한진중공업지회 김진숙

20110611-12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지브크레인 아래.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오긴 왔군요. 이런 해방감들이 얼마만입니까.

8년전 김주익이 한 달 넘게 봉쇄된 공장이 마침내 뚫려 사람들이 이 85호 크레인 밑에 모이던 날 그 소 같은 사람이 울었습니다. 그랬던 사람을 우리는 끝내 못 지켰습니다.  

어제 용역들에게 공장문들이 차례차례 무너지는 걸 보면서 볼트 한가마니를 올렸습니다. 저 혼자 남게 되더라도 끝까지 싸울 생각이었습니다. 많이 보고 싶었고 애타게 기다린 만큼 만나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오작교가 되어 등허리가 다 벗겨지더라도 우리 조합원들과 여러분들 꼭 만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조합원들 많이 다치고 귀때기 새파란 용역아이들한테 내동댕이쳐지고 짓밟히는 걸 전 여기서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습니다. 6개월을 집에도 못가고 불면의 밤들을 술로 견디며 깨진 어항에서 흘러나온 금붕어처럼 숨을 헐떡거리던 저 사람들에게 우리가 외롭지 않음을 우리의 싸움이 정당한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조합원들 한번 봐주십시오. 평생 일한 직장에서 아무 잘못 없이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퇴거압력에 손해배상 가압류에 경찰서 몇 번씩 불려 다니고 가족들 성화까지 견뎌가며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저 지친 어깨에 가족들 생계를 걸머지고 밤엔 절망으로 쓰러지고 아침이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희망을 찾아 기를 쓰고 버텨온 사람들입니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가 목숨 던져 지켜낸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나를 버린다 해도 나는 저들을 버릴 수 없는 이유가 백 가지도 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우리 조합원들이 혁명적 투지로 무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키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6개월 전까지 살아왔던 삶을 지켜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저녁이면 땀 냄새 풍기며 집에 돌아가 새끼들 끼고 저녁 먹고 여러분들이 오늘까지 누려왔던 그 소박한 일상들을 지켜내고 싶은 것 뿐입니다.  

술만 먹으면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저 못나빠진 사람들. 가슴 속 맺힌 한을 이제 그만 풀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8년을 냉방에서 살았던 저의 죄책감도 이제는 좀 덜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이 85호 크레인을 생각하셨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조합원들을 기억해주십시오. 2003년 그 모질었던 장례투쟁의 와중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현서, 다림의 애비, 고지훈, 김갑렬을 기억해주십시오. 짤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함께 싸우는 최승철을 기억해주십시오. 말기 암으로 언제 운명하실지 모르는 아버지보다 동료를 지키기 위해 농성장을 지키는 박태준을 기억해주십시오. 비해고자임에도 이 크레인을 지키고 있는 한상철, 안형백을 기억해주십시오.  

정리해고로 무너지고 용역깡패에게 짓밟힌 저 사람들을... 조남호가 버리고, 언론이 버리고, 정치가 버린 저 사람들을 함께 지켜주십시오. 

백기완 선생님, 문정현 신부님, 박창수 동지 아버님, 박종철 동지 아버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을 만큼 뜨겁게 고마운 여러분. 제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비틀거릴 때마다 천수보살의 손으로 제 등을 받쳐주신 여러분. 꼭 이기겠습니다. 157일 아닌 1,570일을 견뎌서라도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 여기까지 왔던 그 마음 그대로, 아흔 아홉 번 쓰러져도 결코 무릎 꿇을 수 없었던 그 마음 그대로, 굳건히 지켜내겠습니다. 

기륭전자 동지들이 버텨왔듯이, 쌍차 동지들이, 유성 동지들이 버텨가고 있듯이, 그렇게 꿋꿋이 견뎌 나가겠습니다.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에게 감염된 인사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2011년 6월 12일 새벽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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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미술은 주차공간에 보이지않는 투명자동차 / 새벽우물님

먼저,

평등한 삶을 위해 쓰린 삶을 마다하지 않고 앞장서서 싸우는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사람이 모여야 태어나고 자라나는 미술 : 파견미술

파견미술은 왜곡된 권력에 의해 소외되어 있는 현장 속으로 작가 스스로가 파견되는 게릴라적인 미술행동이다. 결과적으로 과정의 기록이미지들과 남겨진 기억의 형태로 존재하는 예술이며 파견미술가들에 의해 진행된다. 파견미술이란 단어는 2009년 부평GM대우 비정규투쟁농성장의 천막미술관 만들기 연대작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의미는 2006~7년 대추리, 2008년 티베트, 2008~10년 기륭, 2009~10년 용산, 등 연대의 현장에서 이루어진 파견미술가들의 미술행동을 소급하여 취하고 있다.




미술에 파견이라는 아이디어를 심어준 파견노동이란 일용직 노동자라고도 불리는 파견직 노동자들의 노동을 말한다.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고용보험조차 보장이 안되는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 정규직 아래 비정규, 또 그 아래 하청노동, 하청의 하청 마지막에 존재하는 것이 파견직 노동이다. 파견이란 본래 임무나 역할을 부여받고 수습이나 처리를 위해 보내짐을 뜻하는 군대 용어이다. 이는 단어의 태생 자체가 일상적으로 일반화되는 상황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 특정 부문에 한정된 의미로 사용됨을 알 수 있다.



파견미술가들은 구체화된 조직이나 지속적인 모임을 피하며 사안에 따라 주도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일회적인 명칭을 갖고 움직인다. (주도적이란 의미는 관리나 운영 등의 진행을 뜻하며 일회적 명칭이 사용된 예로는 '비정규직철폐 투쟁에 연대하는 미술인', '티벳을 생각하는 예술가', '용산참사와 함께하는 미술인', '청년전태일을 그리는 예술가' 등이 있다) 때로 미술 전공자가 아닌 구성원이 참여하게 되는 경우 전공자와 동등한 작가로서 활동을 한다. 파견미술가 소집의 가장 큰 특징은 구성원 모두가 작가이기에 '무엇을', '어떻게' 보다는 '언제', '어디서'가 구체적인 행동의 원인이 된다.
작가라는 존재 자체가 무엇을, 어떻게라는 영역을 이미 확보하고 있고 현장 상황이나 매 사안마다 결정권을 스스로 부여하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파견미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작가들 스스로 정리하여 답한 예가 있다. 2010년 용산참사 1주기를 추모하며 제작된 용산참사 추모 파견미술 헌정집 <끝나지 않는 전시>가 그것이다. 2009년 1월 20일 '여기사람이 있다' 걸개 출력을 시작으로 한 365일의 미술행동은 아무것도 아닌 미술이 '연대'라는 이름을 안고 어떻게 현장과 함께 태어나고 자라나는가를 적절히 보여준다. 용산 현장속에 미술은 무엇이 되려 하거나 무엇이 되고자 하지 않았고 오로지 같이 하고자 하는 연대의 가치를 통해 철거민들과 미술가들의 삶은 공생하였으며 결국엔 각자의 역할이 더욱 더 공고히 분리되어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파견미술은 보이지 않는 투명 자동차.

보이지 않게 주차되어 있는 차에 자발적으로 올라타

현장으로 향하는 파견미술가.

매순간의 섬세한 감동을 밟고 연대의 연료를 먹으며

누구든 결합되는 순간

눈에 보이는 생명력을 얻어 달린다.

오묘한 자연의 법칙과도 같이

과정의 흐름이 조금이라도 흩트러지는 순간

스스로 파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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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88 - 한진중공업지회

20110515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지브크레인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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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청춘의 기억!”展

2009년 용산, 2008년 기륭, 2009년 한남동, 2011년 전북 전주.

이윤엽作

문정현作

전미영·구본주作

2010515 전남대학교 컨벤션홀.

“1991년 청춘의 기억!”

1. 개요

○전시명 : 5·18 광주민중항쟁 31주년 기념 및
           1991년 산화 12열사 20주년 특별전 / 추모연대 기금마련전

                  “1991년 청춘의 기억!”展(가제목)

○일  정 : 2011년 5월 16일(월) ~ 5월27일(금/12일 간) / 개막식 : 5월 16일 오후 4시
○장  소 : 전남대학교 내 용지관
○주  최 : (사)광주민족미술인협회, 광주전남 추모연대, 박승희열사 정신계승사업회
○주  관 : 5·18 광주민중항쟁 31주년 기념 행사위원회
○후  원 :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아시아문화전당 추진단(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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