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87 - 김정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




20140410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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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83 - 이창근 쌍용차지부 해고노동자





20140310 서울 대한문 앞. 故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 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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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78 - 쌍용자동차 노동자 해고통지서

















20140214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앞.


회사는 법원 판결 수용하고 해고자 복직 실시하라!
지난 2월 7일 서울고법 민사2부는 ‘2009년 쌍용자동차가 행한 정리해고는 무효임을 확인’했다. 2009년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총파업에 돌입한지 꼭 1723일만이었다. 법원은 유형자산손상차손이 과다하게 계상되어 재무적 건전성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회사는 구조조정 이유를 ‘동종업체와 비교하여 수익성, 효율성, 재무건정성의 취약을 들어 시급한 개선이 필요한 상태’라 주장했다. 2008년 유형자산 감액에 따라 고정자산이 크게 감소하였다는 주장의 근거가 바로 유형자산손상차손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5,176억의 유형자산손상차손이 직접적으로 해고의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쌍용자동차지부가 주장한 회계조작에 대해 법원이 명확한 판결을 내린 만큼 회계조작을 둘러싼 그동안의 논란은 종식됐음을 우리는 분명히 선언하고 확인한다. 

정리해고가 불법적인 회계조작으로 이뤄졌음을 법원 판결로 확인한 우리는 분노와 허탈감에 넋이 나갈 지경이다. 그동안 4년 6개월 넘는 고통의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만시지탄의 판결이기 때문이다. 24명의 동료와 가족은 차가운 바닥에 얼굴 없는 영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비극적 현실이 우리의 오늘을 대변하고 있다. 아직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김정우 전 지부장은 물론 쌍용차 파업으로 수백명이 전과자로 살아가고 있다. 손해배상액이 47억이며 100억원대의 구상권 청구 또한 현실화 되고 있다. 이번 판결이 다른 재판에 법적으로 영향을 미치겠지만 한 번 덧씌워진 낙인은 좀처럼 벗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쌍용차 정리해고에 직간접적으로 관계한 회계법인과 부실한 감사로 우리를 두 번 죽인 금감원 그리고 쌍용차 경영진에 대한 사법적 처리를 우리가 무겁게 촉구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쌍용차 사태는 이제 해결의 장으로 나가야 한다. 대선 공약으로까지 나아갔던 쌍용차 국정조사의 좌초는 이유 불문하고 여야 구분 없는 정치권의 무능과 방임의 결과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정치권이 사태 해결의 방향으로 논의를 모아줄 것을 촉구한다. 쌍용차 정리해고 무효 판결이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정리해고에 일대 경종을 울린 판결이란 평가가 지배적인 만큼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태에 대해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이토록 방치하고도 집권여당이라 할 수 있는가. 그동안 시시비비에 휩싸였던 쌍용차 문제가 법원 판결로 이제 가지런히 정리됐다. 법원이 대립이 아닌 화해를 위한 여건을 마련해준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무엇을 할 것인가. 또 다시 쌍용차를 시시비비의 정쟁의 장으로 몰아넣어선 안 된다. 지금은 정치권이 정치력을 발휘해 4년 6개월의 고통을 종식할 수 있는 사태 해결의 국면을 열어야 할 시기다. 

1730일만에 해고자 전원이 공장 앞에 선 지금의 심정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이 착잡함의 중심엔 해고자인 우리가 복직을 하게 되면 현장이 또다시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일부의 악의적 비난이 있다. 우리는 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그 의미 또한 잘 알고 있다. 이번 판결은 이념이나 좌우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갈등과 반목의 시간을 슬기롭게 넘기 위한 우리의 의지는 지난 시간만큼 확고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장 혼란을 부추긴다는 일부의 주장은 허무맹랑한 소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우리는 일하고 싶고 갈등을 넘어 웃음과 활기를 현장에 심고 싶다. 

회사에 제안한다. 여기 서 있는 우리를 보라. 한 솥 밥 먹던 우리 얼굴을 보라. 우리는 쌍용자동차를 위해 수십 년간 청춘을 바친 사람들이다. 회계숫자 하나로 단칼에 잘라낼 사람이 아니었지 않는가. 언제까지 이런 갈등의 시간을 보낼 것인가. 이제는 끝내자. 그래서 제안한다. 노사 결단으로 갈등의 불씨를 남기지 않고 해고자복직과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교섭을 열 것을 제안한다. 우리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지금이 어느 때보다 교섭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적기라 판단한다. 법적인 문제와 사회 정치적 해결의 노력과 병행하는 교섭의 줄기를 만들어가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회사는 24명의 영혼과 쌍용차 전체 노동자에 대해 머리 숙여 사죄하라!
법원 판결 나왔다. 회사는 해고자 복직 실시하라!
국가시스템까지 농락한 경영진과 회계법인 등 공범들을 즉각 처벌하라!
정치권은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대책을 수립하라!

2014년 2월 14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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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77 - 기륭전자분회 철야농성 39일차





20140206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국회에서 사회적 합의와 타결, 책임에 대한 토론회 도중 기륭 농성장에 전기가 끊겼다는 연락.. 유흥희 분회장의 글.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조합원에게 카톡이 왔다. 건물주가 와서 전기코드를 뽑고 절도죄로 고소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농성장엔 만삭의 조합원이 있었는데. 우린 전기를 몰래 쓰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얘기했고 사용료를 낼 터이니 요금계산을 해줄 것도 얘기했는데..., 이런 우리 요구를 무시하더니 살다보니 별별 일이 절도죄라니 슬프다."

토론회가 끝나자마자 달려갔더니 화장실에 연결했던 전기코드를 모두 뽑고 화장실 문을 잠가버렸다. 이후 다른 층에 다시 꽂고 뽑고 잠그고 숨바꼭질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이 나라는 최소한이라는 것이 없다. 사람의 가치가 물건보다 못하다. 

2011년 시작된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희망버스가 태동한 건 바로 여기(장소는 다르지만), 기륭으로 모인 사회적 연대의 힘이었다. 그 흐름의 가운데 있던 박성호 한진중공업 지회장과 송경동 시인. 토론회가 끝나고 달려와 텅 빈, 전기가 끊긴 기륭건물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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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70 - 김득중 쌍용자동차 지부장









20131116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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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69 - 고동민 쌍용자동차 조합원





20131116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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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68 - 문기주 쌍용자동차 정비지회장




20131116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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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67 - 이창근 쌍용자동차지부 정책기획실장




20131116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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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66 - 박성호 한진중공업지회 지회장


20131105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가톨릭회관에서 밀양 희망버스 기자회견이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그는 한진중공업지회의 지회장이 되어 있었다.
한진 희망버스가 출발하기 한 달 쯤 전 처음 만나고 그 뒤로 마주친 그의 모습이 떠오르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내가 아는 지회장, 지부장, 분회장 이런 '장'들의 어깨는 얼마나 무거울까 하는 가볍지 않은 생각이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기자회견 뒤 유흥희 기륭분회장과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박성호 한진중공업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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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62 - 콜텍지회 '구일만 햄릿' 연극공연












20131007 서울 혜화동 '혜화동 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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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61 - 김득중 쌍용차지부장



20130926 서울 대한문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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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60 - 방종운 콜트악기지회장


20130926 서울 강서구 등촌동 콜트콜텍 본사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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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59 - 이인근 콜텍지회장


20130926 서울 강서구 등촌동 콜트콜텍 본사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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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58 - 장석천 콜텍지회 사무장



20130926 서울 강서구 등촌동 콜트콜텍 본사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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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57 - 이동호 콜트악기지회 사무장




20130926 서울 강서구 등촌동 콜트콜텍 본사 앞.


2007년 12월 11일 밤 11시 15분경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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