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88 - 한진중공업지회

20110515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지브크레인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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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버스를 타러 가요

희망의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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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 오늘이 129일째 2003년도와 똑 같다


오늘이 129일,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이
이 85호 크레인에 매달려 있던
마지막 날이다.

그때도 구조조정이라는 살인행위가 있었고
거기에 저항해 우리는 2년을 싸웠다.

2년 만에 약속한 노사합의는
쓰레기처럼 버려졌고
그날밤,
김주익 지회장이 이 크레인에 올랐다.

그는 끝내 이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맸고
2주일 후
곽재규라는 노동자가 또 죽었다.

그리고 8년
회사는 다시 정리해고의 칼날을 빼들었고,
1700억 원의 영업이익이 났고,
경영진들은 수백억의 주식배당금을 챙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라는 게
해고사유였다.

그리고 나는
지난 1월 6일 이 크레인에 올랐고
오늘이 129일째,
상황은 2003년도와 똑 같다.


제작 : 문화미디어행동
내레이션 : 85호 크레인 농성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상영시간 : 03분 4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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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85호 크레인 위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씀

20110213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엄마,혹시 나 보여?
보여도 보지마.
엄마 못보고 산지가 30년이 넘었네.생각해보니까 내가 그 나이더라구. 엄마 가버린 나이.나 스무살 때.
그땐 왜 그 나이가 많다고 생각했나몰라.쉰둘인데.쉰둘일뿐인데..그냥 엄마 많이 아프니까,아부지 뵈기싫어 죽겠는데 자꾸 집에와서 있으라하니까,
졸려 죽겠는데 새벽기도 가라 하니까,복수찬 데 돌미나리가 좋다고 한겨울에 그거 뜯어오라 그러니까,병원 갈 돈도 없는 집구석이니까,갈거면 빨랑 가라고 생각한적,
솔직히 많았어.그게 젤 걸리고.
엄마 임종 못본거 다행이라고 생각해.새끼들은 죄다 이기적이니까.
이왕 안볼거면 염하는것도 안봐야했는데 그지같은 외삼촌이 억지로 끌고가서 봐 버렸네.
복어처럼 땡땡해선 시퍼런 심줄이 미나리처럼 돋아났던 배가 시커멓게 푹 꺼졌더라구.
난 그게 다 아부지때문이라고 생각했어.엄마뱃속으로 낳지도 않은 언니들 키우면서 쌓인 스트레스거나.
엄마속이 그렇게 썩어 문드러진 게 나때문이란 생각 끝까지 안하려 했지.
엄마.엄마두 그거 알았어?엄마를 자전거 뒤에 싣고 다니는 걸 내가 참 좋아한 거.평생 40kg이 안넘어 바람에 날릴까 한손으로 등을 받쳐야 했던 우리엄마.
그냥 그렇게 달려서 도망가고 싶었다.어디든.
그걸 할수없었던 나는 번번이 엇나가 홀로 탄 자전거를 하염없이 굴려 갈수없는 길까지 가곤했다.
열다섯살 때.꽤 멀리 갔었다.
안돌아가려 했으니까.
근데 엄마가 보고 싶더라.
내가 자전거 안태워주면 그 무거운 짐을 들고 혼자 시장에서 돌아올 엄마.
산을 내려와 긴 외출에서 돌아오던 그 노을 서럽던 저녁.
장날이었던가봐.오가는 사람이 제법 많았던 먼지나던 신작로.
집언저리쯤에서 눈으로 엄마를 찾는데 엄마보다 먼저본 게 저만치에서 툭하고 떨어지던 주황색 나이롱 바가지였어.흩어지던 콩나물.콩나물위에 떨어지던 눈물.
부산와서 첫월급.그 눈물나는 돈을받아 엄마 쉐타사고 법랑냄비사니까 없더라.
그걸로 내가 지은 죄 갚았다고 생각했어.다.
엄마 유품정리하는데 그딴 게 구석구석에서 나오대.
쉐타는 반다지에서,냄비는 선반위에서 박스채로,중학교때 신문배달해서 사준 털신은 농안에서..
왜 그딴 걸 하나도 안쓰고 죽었냐
이누무 이상한 엄마야.
정신 놓았다가도 진수,진수 부르며 눈을 뜨려 기를쓰던 진수도 갔다.
진수는 니가 좀 거둬줘라.
나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내가 그 새낄 어떻게 거두냐.
엄마찾아 갔으니까 엄마가 거둬.
첫징역 살때 큰언니가 면회를 왔더라.
외포리에서 그 먼길을 오면서 멀미를 으찌 했는지 입술까지 하얘.
제대로 말도 못하고 허리펴고 서있지도 못하고 면회시간이 끝났는데 가면서 그러대.
"그르니 엄마가 일찍 죽길 을마나 다행이냐"..그런 말은 박혀.잘 빠지지도 않고.
그러고보니 살면서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날보다 엄마가 없어서 참 다행이다 싶은 날이 더 많았네.
근데두 엄마.보고싶을 때가 있어.한번만,잠깐만이라도,안되면 먼발치에서라도 봤으면 좋겠다 싶은 날이 있어..

-어버이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고공농성 120일을 훌쩍 넘기고 있는, 부산 민주노총 지도위원이자 27년 해고자, 한진 조합원, 김진숙 님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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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

20110325 서울역사박물관 앞. 정리해고 철회 및 희생자 추모 범국민대회.

너희는 참 좋겠구나 
[추모시] 쌍용차 희생자 열 네 분과 신자유주의 정리해고의 쓰나미에 휩쓸려 희생당한 우리 시대 모든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너희들은 좋겠구나
이젠 5.18 광주에서처럼
총으로 곤봉으로 대검으로 때려죽이고 찔러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죽어가니

좋겠구나
이젠 한진중공업 박창수처럼 YH무역 김경숙처럼
굳이 끌고 가 떠밀어 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떨어져 죽어가니

너희는 참 좋겠구나
이젠 용산에처럼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망루에 가둬두고
짓밟고 태워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피 말라 죽어가니

너희는 정말 정말 좋겠구나
이런 만고강산 이런 태평천하
이런 누워서 떡먹기 이런 부라보
이런 룰루랄라 이런 땅 짚고 헤엄치기
시간만 가면 돈이 벌리는 이런 희안한 세상이
배 터지게 입 찢어지게
환장하게 좋겠구나

노동자들만 눈물바다구나
평생을 뼈빠지게 일하며 눈물바다
평생을 생존권에 쫓겨다니며 눈물바다
평생을 길거리에서 싸워가며 눈물바다
급기야 저절로 목숨까지 반납하며 눈물바다
짜디짠 눈물 바다 뿐인
노동자 세상이 참 좋겠구나

이 더러운 세상을 어떻게 사나
이 서러운 세상을 어떻게 사나
더 이상 물량과 생산성에 쫓기지 않고
더 이상 구사대 경찰에게 쫓기지 않고
더 이상 실업과 생활고에 쫓기지 않고
먼저 가서 자네는 좋겠네 라고 얘기해야 하나
차라리 먼저 가서 자네는 행복하겠네 라고 말해야 하나

무한 경쟁 무한 생산 무한 소비로
벼랑에 도달한 것은 자본인데
왜 등 떠밀려 묻혀야 하는 것은 착한 우리들만인가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민중들이 살처분당해야
너희의 위기는 해소되는가

돌려 말하지 마라
이것은 계획된 살인
이것은 준비된 학살
이것은 우리 시대 모두를 향한 자본의 테러다
우리는 더 이상 묻힐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서야 하는 것은 너희다
이 참혹한 땅에 매몰되어야 하는 것은 이 열 네명이 아니라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해고노동자들과 비정규직들이 아니라
이 시대의 가장 악독한 산재이며 구제역인
자본과 권력 너희다

너희를 묻지 않고
우린 이 열 네분의 참혹한 시신을 묻을 수 없다
너희들을 단죄하지 않고
우린 어미 아비를 잃은 이 아이들의 슬픈 눈망울을 쳐다볼 수 없다
더 이상 이런 아픈 추모시를 쓸 수 없으며
더 이상 이런 뼈아픈 추도사를 읊을 수 없다

그러니 우리 일어서자
더 이상 죽지 말고
일어서자. 엄마, 아빠 제발
죽지 말고 일어서자
여보, 제발 쓰러지지 말고
죽지 말고 일어나 싸우자
이 시대의 악성종양
이 시대의 흡혈귀
저 자본과 권력을 죽이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일어서자
일어서자 일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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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79 - 한진중공업

20110318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지브크레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고공농성 72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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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훑어봐도

20110311 서울 종로 보신각.

슬쩍 훑어봐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넷이나 보인다. 김형우, 이창근, 문기주,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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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77 - 쌍용자동차, 대우차판매, 한진중공업

20110311 서울 종로 보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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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74 - 쌍용자동차

20110304 국회 환노위 앞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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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73 - 쌍용자동차

20110228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정문 앞.

해고는 살인이다
- 쌍용자동차 14번째 희생자 故 임무창 동지에게

                                                                 송경동

차가운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당신의 슬픈 부음을 전해 들었다
허망하고 분했다
마흔 넷 평생을 일하고 남은 것이라곤
통장잔고 4만 원, 카드빚 150만 원
아파트 난간에서 뛰어내려버린 아내와
생이 위태로운 아이들 둘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우리들의 이웃들에게
우리들의 가족들에게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있어선 안 되는 일

이것은 정상적인 죽음이 아니다
이것은 공공연한 살인
예고된 타살이다
미안하지만 당신은 은밀하게 살해당했다
교묘하게 피살당했다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그렇다 미안하지만
이 땅에서 우리는 살아서도
산 목숨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하나의 구설수였고 사기였다
우리의 몸은 다만 경쟁의 수레바퀴를 돌리며
이윤을 낳을 때만이 의미 있는 하나의 나사산
언제든 대체되거나 버려질 수 있는 값싼 재료였을 뿐
우리의 생명은 이미 저 절망공장
착취의 라인에 갇혀 얌전히 일하고 있을 때부터
죽어 있었다
그마저 빼앗으려 할 때
해고는 살인이라고 마지막 저항에 나섰지만
돌아온 것은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진압 뿐

그렇게 이미 부재였던
당신이 떠나간다고 한다
이미 실종당했던
당신이 떠나간다고 한다
이미 감금당했던
당신이 떠나간다고 한다
이미 매장당했던
당신이 영영 떠나간다고 한다

이떤 노래가 있어 당신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
어떤 시가 있어 당신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어떤 기도가 있어서 당신의 고통을 덜어내줄 수 있을까
그것은 투쟁 뿐
피눈물로 당신을 보내며
우리는 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우리에겐 없음을
이대로는 살 수 없음을
이제 우리는 안다
장례 지내야 할 것은 동지들의 피맺힌 목숨이 아니라
저 절망의 자동차 공장임을
이제 우리는 안다
쫓겨나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닌 이 추악한 자본주의이며
더러운 자본가들과 그 기생충들이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우리가 다시 생산해야 하는 것은
이 눈먼 자본의 폭주 자동차가 아니라
진정한 호혜와 평등과 평화의 거리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우리가 다시 손에 들어야 하는 것은
몽키 스패너 건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정의여야 한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우리 안에서 다시 새로운 동지의 생명이 움트고 있는 것을
전혀 새로운 시대를 열어제낄 해방된 시대의
인간이 내 안에 자라나오고 있음을
이제 우리는 안다
지난 시대에 우리 모두는 가난하고 소박했지만
그런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지탱하는 아름다운 차체부였고
어둔 세상을 돌리는 엔진부였으며
추한 세상을 아름답게 칠하는 도장부였음을
이제 우리는 안다
다만 울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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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72 - 한진중공업지회

20110213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지브크레인 아래. 그 대차던 노동자 오대일의 눈물.

김진숙 지도위원 14번째 편지글(크레인 고공농성 39일차)

대일아, 한 번도 본적도 없고 얘기를 나눠 보지도 않았지만 얼마 전 촛불집회 때 써 보낸 편지에 나를 누나라고 불러줬으니 편하게 동생이라고 부르마.
내가 해고되지 않았고 너 또한 해고되지 않으면 우린 조립팀에서 김주익 지회장과 함께 이용대 대의원 같은 분들과 조립팀 동료로, 선후배로 평화롭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해고됐고 너는 해고를 앞두고 있고 김주익 지회장은 죽었다.
노동자에게 해고란 해고될 당시에만 상처받고 아픈 게 아니라 평생을 따라다니는 낙인이고 아물지 않는 상처다.
더군다나 함께 민주노조를 세우겠다고 매일 저녁 만나서 회의하고 토론하고 유인물을 뿌리고 짓밟히고 두들겨 맞아가며 투쟁을 함께했던 박창수 위원원장을 잃고 나는 평생을 죄인으로 살았다.
나 때문에 박창수 위원장이 죽었다는 죄책감 때문에 대공분실에서 그 치욕을 겪으면서도 징역살이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나는 이 길을 벗어날 수 없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너에겐 일곱 살 짜리 딸과 세 살짜리 아들이 있다고 했느냐.
박창수 위원장에겐 여섯 살 짜리 아들과 세 살 짜리 딸이 있었다.
그가 죽고 20년 세월이 넘도록 용찬이가 어떻게 컸는지, 예란이가 몇 학년인지, 그 부인이 어떻게 사는지 한 번도 마음 편히 안부를 물을 수가 없었다.
그가 위원장에 당선되던 날 나는 감옥에 있었고, 내가 감옥에서 나왔을 땐 그가 감옥에 있었다. 그가 징역에서 출감도 못한 죄수의 신분으로 죽었을 때 나는 수배 중이었다.

몇 달 더 고생하면 만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던 사람이 너울너울 만장 앞세우고 동지들의 어깨에 멘 관에 담겨 영도다리를 넘어 오던 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우는 거밖엔 없었다. 내가 울고 있을 때 아저씨들은 화염병을 들었다.
대일이 네가 선배, 형님이라고 부르는 아저씨들이 안기부에 화염병을 던지며 몇 달을 싸워 지켜낸 생존권이고 노동조합이다.

형님들은 한이 많은 사람들이고 나는 죄가 많은 사람이다.

그 이후로도 동지들의 죽음을 차례차례 묻으며 형님들은 여기까지 왔다. 이젠 너희들이 형님들을 지켜 줄 차례다.
여기서 더 이상 밀리면 안 되지 않겠느냐. 더 이상 빼앗기면 안 되는 거 아니겠느냐.
한 인간의 탐욕을 위해 수백 명이 죽을 순 없는 거 아니냐.
생각만 해도 목이 메이는 우리 새끼들 지켜야 되지 않겠느냐.

울산에서 내쫒기고 그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너를 또 쫒아내겠다는 회사.
설사 이번에 빠진다 하더라도 자본은 더 큰 아픔으로 우리를 짤라 정규직의 씨를 말릴 것이다.
네 동생에게 해고통보서를 보낸 한진 자본.
본가에까지 해고통보서를 보내 부모님들한테 까지 충격을 준 저 짐승만도 못한 놈들과 싸워 꼭 이겨야 하지 않겠느냐.
꼭 이겨서 미칠 듯이 보고 싶은 아이들한테로, 사랑하는 마누라한테로 환하게 웃으며 돌아가자.
네가 형님들을 믿고, 형님들이 동생들을 믿어 준다면 우린 오대일로 이길 수 있다.

한진중공업의 모든 오대일들, 투쟁!

2011년 2월 13일
크레인 고공농성 39일차 저녁촛불문화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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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지도위원 김주익 열사 추모사



김주익 열사 추모사

작년에 한진에서 밀려난 아저씨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30년 일해 온 일터에서 명퇴란 이름으로 강제로 밀려난 아저씨는 술이 한잔 들어가자 박창수 위원장 이야기를 하며,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 아저씨가 자꾸 미안하다며 울었습니다.

50년이 넘은 사내가 10년도 더 지난 일로 술잔에 눈물, 콧물을 빠뜨리는 걸 보면서 우리 모두에게 박창수란 이름은 세월의 무게로도 덮을 수 없는 아픔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박창수 하나만으로도 우린 무겁고 아픕니다.

 두 번쨉니다. 대한조선공사를 한진중공업이 인수한 이후 여섯 명의 위원장 중 두명은 구속 뒤에 해고되고, 한 명은 고성으로, 율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쫒겨 다니고, 두 명은 죽었습니다.

지난 번 위원장 선거가 끝나고 어떤 아저씨가 그러셨습니다. "내는 김주익이 안 찍었다. 똑똑하고 아까운 사람들, 위원장 뽑아 놓으면 다 짤리고 감방 가고 죽어 삐는데,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김주익이를 우째 또 사지로 몰아넣겠노?"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우리가 뭘 그렇게 죽을 죄를 졌습니까? 조양호 회장님, 조남호 부회장님, 언제까지 하실 겁니까? 이 소름 끼치는 살인 게임이 앞으로 몇 판이 더 남았습니까?

 LNG 선상 파업으로 김주익 지회장이 구속됐을 때 인권 변호사 이름을 팔아 그를 변호했던 노무현 대통령 각하! 노동자의 가련한 처지를 팔아 따 낸 권력의 맛이 그렇게 달콤합디까? 조중동 그 찌라시들의 꼬붕 노릇이 그렇게 안락하더이까? 대기업 노조가 나라를 망친다 했습니까?

21년 된 노동자의 임금이 105만 원. 세금 때면 80만 원, 그마저도 가압류로 12만 원. 129일 크레인에 매달려 절규를 해도, 늙은 노동자가 88일 애원해도, 청와대. 노동부. 국회의원 누구 하나 코빼기 내미는 놈이 없었습니다.

동지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민주노조 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교도소 짬밥보다 못한 냄새나는 꽁보리밥에 쥐똥이 섞여 나오던 도시락 그냥 물 말아서 먹고, 불똥 맞아 타들어 간 작업복, 테이프 덕지덕지 넝마처럼 기워 입고 체감온도 영하 수십도 한겨울에도 고양이 세수해 가며, 쥐새끼가 버글거리던 생활관에서 쥐새끼들처럼 뒹굴며 그냥 살 걸 그랬습니다. 변소에 버글거리던 구더기들 처럼 그냥 그렇개 살 걸 그랬습니다.

한여름 감전 사고로 혈관이 다 터져 죽어도, 비 오는 날 족장에서 미끄러져 라면발 같은 뇌수가 산산이 흩어져 죽어도, 바다에 빠져 퉁퉁 불어 죽어도, 인명은 재천이라던데 그냥 못 본 척 못 들은 척 살 걸 그랬나 봅니다.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내일에 대한 희망도, 새끼들에 대한 미래 따위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며, 조선소 짬밥 20년에 100만 원 받아도 '회장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감지덕지 살 걸 그랬습니다.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박창수가, 김주익이가, 그 천금 같은 삶들이, 그 억만금 같은 사람들이 되돌아올 수 있다면, 그 단단한 어깨를, 그 순박하 웃음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 있다면, 용찬이 예란이에게, 준엽이, 혜민이, 준하에게 아빠를 다시 되돌려 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의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어쩌자고 그렇게 착하고, 어쩌자고 그렇게 우직했단 말입니까?

 애비 잘 만난 조양호, 조남호, 조수호, 조강호는 태어날 때부터 회장님, 부회장님으로 세자 책봉받는 나라. 이병철 회장님의 아들이 이건희 회장님으로 재계 순위 1위가 되고, 또 그 아들 이재용 상무님이 2위가 되는 나라. 정주영 회장님의 아들이 정몽구 회장님이 되고, 또 그 아들 정의선 부사장님이 재계 순위 4위가 되는 나라.

태어날 때부터 그 순서는 이미 다 점지되고, 골프나 치고 해외로 수백억씩 빼돌리고, 한 달 수천만 원을 써도 재산이 오히려 늘어나는 그들이 보기에 한 달 100만 원을 벌겠다고 수도 쉴 수 없고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탱크 안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겠습니까? 순이익 수백 억이 나고 주식만 가지고 있으면 수십 억이 배당금으로 저절로 굴러들어 오는데, 2년치 임금 7만 5,000원을 올리겠다고 크레인까지 기어올라 간 그 사내가 얼마나 불가사의했겠습니까?

 비자금으로, 탈세로 감방을 살고도, 징계는커녕 여전히 회장님인 그들이 보기에, 동료들 정리해고 막겠"다고 직장에서 맞서다 직장에서 해고된 노동자가 징계 철회를 주장하는 게 얼마나 가소로웠겠습니까? 100만 원 주던 노동자 잘라 내면 70만 원만 줘도 하청으로 줄줄이 들어오는 게 얼마나 신통했겠습니까? 철이 노동자를 외치며 수백 명이 달려들다가도 고작해야 석 달만 버티면 한결 순해져서 다시 그들 품으로 돌아오는데, 그게 또 알마나 같잖았겠습니까?

 '조선강국'을 위해 한 해 수십 명의 노동자가 골반 압착으로 두부 협착으로 죽어 가는 나라. '물류강국'을 위해 또 수십 명의 화물 노동자가 길바닥에 사자밥을 깔아야 하는 나라. 섬유 도시 대구, 전자 도시 구미, 자동차 도시 울산, 화학 도시 여수, 온산. 그 허황한 이름들을 위해 노동자의 목숨이 바쳐지고 그들의 뼈가 쌓여 갈수록 자본의 아성이 점점 높아지는 나라.

 쉰이 넘은 농민은 남의 나라에 가서 제 심장에 칼 꽂고 마지막 유언마저 영어로 남겨야 하는, 참으로 세계화된 나라. 전 자본주의가 정말 싫습니다. 이제 정말 소름 끼치게 무섭습니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이 유서와, 세기를 건너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던 김주익이 죽는 방식이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그들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지는 겁니다. 만날 우리만 죽고 천 날 우리만 깨집니다. 아무리 통곡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꺼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연젠가는 갚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고스란히 되돌려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버이날 요구르트 병에 카네이션을 꽂아 놓고 아빠를 기다린 용찬이. 아빠 얼굴을 그려 보며 일자리 구해 줄테니 사랑하는 아빠 빨리 오라던 혜민이.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동지 여러분! 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2003년 10월 22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노동탄압 규탄 전국대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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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71 - 한진중공업지회

20110213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나이 29에 정리해고란 통보서를 받으니 날개가 꺽인 기분입니다.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생긴다지만 너무 빨리 왔네요. 하하하.
하지만 겁은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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