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283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20130105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앞. 다시 희망만들기.

 

강서야. 오늘은 내가 크레인에 오른 지 만 2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 영하 13도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널 지키겠다고 했는데, 너는 가고 나는 남았다.

강서야. 네가 없어도 해는 뜨고 네가 없는 세상에서도 시간은 흘러 그렇게 16일이 지났다. 널 냉동실에 눕혀놓고 꾸역꾸역 밥을 먹는 우린 이 겨울이 참 춥다.

강서야. 재작년 겨울, 내가 출근투쟁을 할 때, 주머니에 따뜻한 음료를 넣어주던 강서야. 그때 그 두유 한 병이 참 따뜻했다는 말을 아직 하지도 못했는데 그 말을 들어줄 너는 없다. 미처 고맙다는 말을 건넬 틈도 없이 너는 출근을 했고 정리해고라는 살생부가 떨어지기 전, 그 아침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 아침처럼 아빠 다녀오시라는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하는 아침을 다시 맞는 일이 이렇게 힘들구나.

해가 뜨기도 전, 이른 아침 담배연기처럼 입김을 내뿜으며 출근을 했던 조합원들은 해고됐고, 네가 출근을 했던 문은 봉쇄되고 그 봉쇄된 문 앞엔 너의 빈소가 차려졌다. 이력서에 붙였던 사진은 영정이 되고 그 영정 앞에 다시 상복을 입은 사람들. 그 광경이 기가 막힐 뿐이다.

2003년, 네 나이 스물여섯. 그때 네가 입었던 상복을 너의 동지들이 다시 입었다. 9년 전, 그때만 하더라도 김주익이라는 사람이 왜 목숨까지 던져야 했는지, 11살, 9살, 7살 아이를 두고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는지 다 이해하긴 힘들었을 거야.

김주익 지회장을 따라간 곽재규라는 사람의 마음을 다 헤아리기도 어려웠을 거야. 그걸로 끝이어야 했다. 다시는 이런 불행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 두 사람의 빈소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던 경영진의 사과는 진심이어야 했다. 복지관을 지어주며 화해의 손을 내밀던 그 웃음도 진심이어야 했다. 그러나 8년 만에 저들은 다시 정리해고의 칼날을 휘둘렀고 400명이 잘렸다. 이제는 화합해야 할 때라고 말하던 그 입으로 저들은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했고 웃으며 악수를 건네던 그 손으로 복지관 건물을 하나하나 폐쇄했다.

내 전화기에는 2년만에 복직하던 날, 파이팅을 외치며 환하게 웃던 너의 사진이 남아있다. 아마도 네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웃는 모습. 그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공장으로 들어갔니? 살아서는 넘을 수 없었던 공장의 벽을 그렇게 넘어갔니? 그게 마지막이라는 것도, 시퍼런 나이의 너를 열사라고 부르는 것도 우린 아직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이렇게 막막하다.

네가 떠나던 날 새벽, 목이 졸리는 꿈을 꾸었다는 동순이 형님. 동생들을 살리고 싶어 크레인 위에서 40일 단식을 했던 그 형님이 십분만 일찍 사무실로 갔으면 널 살렸을 거라고 가슴을 친다. 네가 잠든 모습을 보고 깨우지 않고 출근 선전전을 나갔던 동지들이 평생 짊어져야 할 상처는 아프고 깊다. 눈도 벌겋고 가슴도 벌건 채 소리 내 울지도 못하는 사람들. 널 땅에 묻고 나면 그때는 소리내 울 수 있을까.

그동안 필리핀 수빅으로 수주를 다 빼돌리고 영도공장엔 4년이 넘도록 수주 한척을 못 받았던 무능한 경영진들은 이제 수주를 받을만하니 또다시 분규를 조장한다고 게거품을 문다. 끝까지 너의 죽음을 개인적인 생활고로 모욕하는 저들은 개인적인 죽음에 왜 여당대표까지 조문을 오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저들의 횡포에 졌다고 너는 말했지만 그 말이 포기가 아님을 우린 안다. 넌 누구보다 강했으니까. 넌 누구보다 의연했으니까. 그리고 넌 누구보다 따뜻했으니까.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싸우고 싶었던 네 몫까지 우리가 싸울게. 강서야.

"나는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자로 살아간다. 내 아들 또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척박한 노동조건. 그러나 어제 하루는 광활한 우주 속 노동자의 지구를 찾은 듯한….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연대해 준 동지들은 하루겠지만 나에겐 미래다.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동지들. 투쟁!"

재작년 6월 12일 희망버스가 처음 다녀간 다음 날, 강서가 트위터에 남긴 글입니다. 이 추운 날 먼 길을 다시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너무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이 오신 걸 알면 강서도 많이 기뻐할 겁니다. 살아서 얼싸안고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복직하는 날이라고 설레며 출근했던 그 아침이 그대로 이어졌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강서의 말대로 조합원들이 다시 민주노조로 돌아오고 우리 조합원들이 다시 공장에서 땀 흘려 일하게 되는 날. 그날 강서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저항하는 사람들을 끌고 가 6개월을 고문하고 하루만에 사형을 집행한 유신 때도 싸웠고, 민주노조했다고 대공분실에 끌고 가 거꾸로 매달았던 군사독재 때도 싸웠습니다. 그게 역삽니다. 철탑에서 노동자의 존엄성을 지키는 노동자들이 있고 그리고 이렇게 함께하는 우리가 있습니다. 목숨을 건 철탑농성을 기만하고 죽음마저 외면하는 저들과 끝까지 싸워 우리 힘으로 동지들을 내려오게 하고 강서를 편히 보내줍시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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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123 - 김진숙 지도위원 편지를 듣는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

 

 

20110511 서울 대한문 옆 분향소 앞.

 

쌍용콘서트 악!樂 첫 순서로 무대에 오른 김진숙 지도위원이 읽는 편지를 듣고 있는 김정우 지부장.

 

며칠 전 코오롱에서 해고된 노동자가 트위터에 올린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온 가족이 벚꽃처럼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해고되기 전이라니까 8년 전 사진이다. 8년째 싸우는 노동자의 삶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아빠가 해고된 후 그 가족들은 8년 동안 소풍을 간 일도, 가족 사진을 찍은 일도, 저렇게 환하게 웃어본 일도 없을 것이다. 너희가 그렇듯이. 어버이날이 아프고, 어린이날이 아프고, 가족사진마저 상처인 사람들이 세상엔 있단다. 그럼에도 5월은 이토록 눈부시구나.

 

한 공장에서 2,646명이 짤리고, 유서도 없이 스물두 명이 죽었다. 믿었던 회사로부터 버려지고 하늘같았던 국가권력에게 그렇게 짓밟히고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가 있었겠니. 18,000원이 남은 저금통장과 늘 작업복을 곱게 다려놓았던 아빠는 너희에겐 단 하나뿐이던 세상 가장 소중한 엄마, 아빠가 쌍용자동차 열 몇 번째 사망자의 기록으로만 남겨진 사회, 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걸까. 어른들이 해고로 인한 배신감과 생존에 대한 절망으로 경계에 서 있다면 너희들이 서 있는 곳은 어디쯤일까.

 

한진에서 아빠들이 해고돼 싸울 때 아이들은 용역놀이를 하고 놀았다. 학교 운동장 구령대 위에 올라간 아이가 “내가 진숙이다” 외치자 밑에서 용역 역할을 하던 아이가 “진숙이 잡아라” 우르르 뛰어올라와 때리고 짓밟는 놀이였다. 그날 진숙이 이모 역할을 했던 아이는 자면서도 흐느끼며 살려 달라고 했단다. 실제로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그런 놀이를 하게 된 걸까. 공장을 휩싸고 있던 불안하고도 음울한 공기가 그런 상상력을 만들었겠지. 아이들의 영혼까지 잠식하는 정리해고, 아빠가 노숙하는 걸 본 태균이는 집에서도 라면 박스를 깔고 잤다. 아이들은 그 일들을 몇 살까지 기억하게 될까. 잊혀지긴 할까.

 

어제 삼성반도체에서 7년을 일하다 숨진 이윤정의 장례식. 용역들에게 둘러싸여 회사 근처에서 노제를 지내며 여덟 살, 여섯 살 아이들이 길바닥에 엎드려 엄마에게 마지막 절을 하는 송편만한 발바닥을 사진으로 봤다. 그 아이들은 그 작은 발로 엄마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한다. 돈이 인간을 지배하고 살인도 서슴지 않는 이 잔인한 세상이 어린 너희들을 자꾸 상주로 만드는구나.

 

3년을 길바닥에서 싸우는 아저씨들이 저렇게 기를 쓰고 버티는 건 너희들에 대한 미안함이 클 거야. 어른들이 밉고 세상이 아무리 원망스러워도 저 아저씨들의 마음을 헤아려 힘을 내주렴.

 

쌍용자동차 동지들, 영도로 오는 희망버스의 앞을 가로막아서라도 그 버스를 평택으로 돌리고 싶었을 동지들. 우리도 절박합니다. 우리도 좀 살려 주십시오. 애원이라도 하고 싶었을 동지들. 그러나 누구보다 뜨겁게 희망버스를 만들어내고 헌신적으로 연대했던 동지들. 한여름 발이 짓무르고 무릎이 망가지도록 아스팔트를 걸어 평택에서 부산까지 오셨던 동지들.

 

고목나무에 이제야 싹이 돋습니다. 삼 년을 기다려온 희망이란 푸른 잎새가 돋아나 보입니다. 꼭 승리해서 공장으로 돌아갑시다. 스물두 명 그 피눈물 나는 원혼을 안고 반드시 돌아갑시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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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광장을 희망의 광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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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희망버스, 우리 시대의 전태일들

지난 주 경동 선배와 정진우 실장 보석 석방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이런 행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울산 가느라 참석 못해 많이 아쉬웠지만, 전미영 작가님과 유아 선배 덕에 어머니 사진이나마 쓸 수 있어서 위안이 됐다.


“노동자의 어머님, 저희 싸움에 힘과 용기를”

이소선 묘역 찾은 김진숙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 시대의 전태일들, 이제야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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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알아냈을까


오늘 아침에 받았다. 가장 분한건 통보유예요청기간이다. 사진가를 범죄인 취급한 게 아닌가. 올해 영도경찰서 참 바빴겠다.
송땡원 씨 뭘 알아내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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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상상력을 가두지 마라!


시인의 상상력을 가두지 마라! 시인의 양심을 구속하는 정부는 ‘나쁜 권력’이다!

- ‘희망버스’ 기획자 송경동 시인의 석방을 촉구하는 〈한국작가회의〉 성명서
 
 지난 18일 밤 부산지방법원은 한진중공업의 노사갈등과 관련해 ‘희망버스’ 행사를 기획하고 주도했다는 이유로 시인 송경동 씨에 대해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법방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등 다섯 가지 혐의를 적용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한국작가회의(이사장 구중서)는 시인 송경동 씨를 구속하는 정부, 곧 시인의 상상력을 억압하는 정부는 ‘나쁜 정부’일 수밖에 없으므로, 정부에 의한 그의 구속을 제대로 된 민주주의 하에서는 있을 수 없는 ‘문화폭압’으로 규정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한국작가회의는 시인 송경동 씨를 지금 당장 ‘무조건 석방하라’고 강력히 촉구한다. 시인의 양심과 상상력을 가두는 처사는 이른바 문화선진국을 자처하는 이 정권 스스로의 논리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다른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실질적인 침해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난 10여 년 동안은 양심과 상상력에 입각한 문인들의 행위가 정부의 실정법에 따라 구속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한국작가회의는 ‘희망버스’ 행사를 기획했다는 혐의로 시인 송경동 씨를 구속한 이 정권의 반(反)인권적 처사와 반(反)문화적 행태에 참담한 분노는 물론 참을 수 없는 연민을 금치 못한다. 레임덕의 상황에 직면해 저지르는 이 정권이 단말마적 비명에 어찌 우리가 분노와 여민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자리를 빌려 우리는 시인 송경동 씨가 지난 15일 오후 7시 25분경 부산 영도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이틀 동안 경찰의 조사에 임하고 있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집행했으니 이러한 사법당국의 처사를 법의 목적을 사회의 평화에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순수한 법 감정을 제멋대로 훼손한 매우 부당한 처사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제 발로 찾아간 시인 송경동 씨를 도주 우려 운운하며 구속하는 것은 그의 양심을 한낱 파렴치범으로 간주하려는 태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이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희망버스’ 행사와 함께 했던 깨어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피플 파워’를 아무런 개념 없이 불법으로 매도하는 옹졸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시인이란 누구인가.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위험으로부터 피하는커녕 오히려 위험에 처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신을 향해 기도하고 외치는 존재가 아닌가. 시인은 앵무새처럼 국익(國益)을 말하는 정부 및 사용자의 ‘나쁜 말’에 맞서 국익보다 더 소중한 한 사람의 ‘생명’과, 노동자들이 마음껏 노동할 수 있는 ‘자유’와,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평화’를 깨우고 노래하는 존재가 아닌가. 바로 이러한 점에서 ‘희망버스’ 행사는 시인 송경동 씨이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었던 시민참여의 한바탕 축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가리켜 그가 꿈꾸고 열망해온 ‘재미를 위한 혁명’의 한 사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이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더라도 시인 송경동 씨를 구속하는 일은 시인의 양심과 상상력이 연출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만든 일종의 ‘행위예술을 국가권력이 앞장서 훼손해버리는 일이지 않을 수 없다.

한진중공업의 해고노동자 출신 김진숙 부산민주노총 지도위원 등이 309일 간 고공농성을 한 행위는 세계 노동운동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엄청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시인 송경동 씨가 시인의 양심과 상상력으로 기획하고, ‘노동하기 좋은 나라’ 및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다수의 시민들이 참여해 만든 아름다운 연대에의 기적, 곧 ‘희망버스’ 행사 역시 세계 문화운동사에서 유례가 없는 엄청난 일이다. 하지만 정작 유래가 없는 엄청난 일은 김진숙 부산민주노총 지도위원에 의해 309일 간의 고공농성이 진행되는 동안 이 땅에서 살 권리를 박탈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아가 한진중공업 노사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한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약자에게 무례하고 무능한 이 정권의 진면목을 ‘희망버스’ 행사를 통해 여러 차례 적나라하게 목격을 한 바 있다. 물론 시인 송경동 씨 등의 노력에 의해 김진숙 지도위원을 비롯한 고공 농성자들이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무사히 내려온 일은 이미 국내외의 뜨거운 관심사가 되어 있지만 말이다.

이에 한국작가회의는 시인 송경동 씨의 구속을 더 나은 사회와 더 나은 문화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온 이 나라의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지니고 있는 양심과 상상력을 함부로 침해하고 간섭하는 ‘나쁜 권력’의 대표적인 문화검열 행위라고 규정한다. 어렵게 체결된 한진중공업 노사 간의 합의와, 그에 따른 화해의 정신을 단번에 부정해버리는 정부의 이러한 처사는 머잖아 우리사회 곳곳에 엄청난 갈등과 대립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이러한 면에서라도 한국작가회의는 시인 송경동 씨가 좀 더 빨리 그의 가족과 문학의 현장으로 복귀하기를 희망한다. 만일 즉각적인 석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시민들과 더불어, 그리고 국내외 저명한 문인들과 더불어 그의 즉각적인 석방을 위해 끝까지 연대하고 투쟁할 것임을 밝혀둔다.

오는 11월 22일(화)은 진작 시인 송경동 씨로 수상자가 결정된 [신동엽 창작상]의 시상식이 있는 날이다. 시인 송경동 씨는 시집 『꿀잠』,『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등의 시집을 통해 ‘시와 행동’이 일치하는 작품을 열정적으로 써온 이 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우리는 이날 시상식의 행사가 주인공이 없는 행사가 되지 않기를, 다시 말해 객(客)들의 잔치가 되지 않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이러한 이유에서라도 우리는 정부가 어떠한 조건이나 단서도 달지 말고 ‘지금 당장’ 시인 송경동 씨를 석방하라고 거듭 촉구한다.
 
2011년 11월 20일
(사)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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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106 - 김진숙 지도위원은 등이 아프다

20111119 부산지방법원

기억력이 안 좋아지셨다. 크레인 전에도 몇 번 인연이 있었는데 어디서 와서 자꾸 찍냐고 묻는다. <사람을 보라> 작업을 했다고 하니 그 사진집은 아시는지 반갑게 악수를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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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우리는 언제 이겼을까

20111115 서울 민주노총 건물. 부산으로 출발하기 전.

정신없이 봄여름가을이 갔다. 생각해보니 단 하루도 일이 없는 날이 없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는 눈만 열면 눈물이 쏟아지던 일주일여가 있기도 했다.
이렇게 막막한 시간을 김진숙 선배와 박성호, 박영제, 정홍형, 그리고 단식 40여 일만에 실려내려와야 했던 신동순 조합원은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그 아래에서 하루하루 가슴을 태우며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힘들 때마다 그들과 희망의 버스를 지켜주는 승객 여러분들을 생각했다. 함께 일하며 몇 달 동안을 낮밤없이 피로감에 지치면서도 굳건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으려는 깔깔깔 벗들을 생각했다.
 
작년 이맘때엔 병원에 있었다. 기륭전자비정규 투쟁 당시 포크레인에서 떨어지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병원에 누워 있는데 구미 KEC와 현대자동차비정규직 투쟁 현장에서 두 분이 분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GM대우 비정규직들이 정문 아치에 오르고, 부산에서 김진숙 선배가 85호 크레인에 올랐다는 소식과 대우조선비정규직 강병재 씨가 고공철탑에 올랐다는 소식이 다시 들려왔다. 그때마다 이 시대에 대한 싸늘한 분노와 안타까움이 가슴을 저몄다.
 
특히 김진숙 선배가 오른 85호 크레인은 2003년 김주익 열사가 목을 매달고, 곽재규 열사가 도크에 떨어져 죽은 한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곳이었다. 그후 8년동안 방에 불을 때지 않고 살았다는 김진숙이 어떤 마음으로 그곳에 올라갔을까, 간담이 서늘했다. 무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재능과 쌍용, 콜트콜텍, 발레오, 유성, 전주버스도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85호 크레인 그곳은 그냥 단위사업장의 어느 한 곳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지난 서러운 역사가 고스란히 배인 곳이었다. 최소한의 노동자들의 자존심이 지켜져야 하는 곳이었다. 다시는 절망의 무덤이 되지 않고, 희망의 등대가 되어주어야 하는 곳이었다.
 
희망의 버스는 그 모든 분노와 안타까움이 모여 만들어졌다. 누구 몇 사람이 기획하고, 제안한 게 아니다. 실제 희망버스가 기획된 곳도 쌍용과 재능과 콜트콜텍 등의 농성장이었다. 연대에 목말라 본 우리라도 저 외로운 85호 크레인에 연대하자가 시작이었다. 실제 1차 희망의 버스의 주동력은 그간 그렇게 싸워왔던 현장의 동지들이었다. 기륭과 동희오토, GM대우, 홍대 등 청소노동자투쟁, 그리고 용산과 두리반 등에서 싸움을 함께 지키던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진정성이 희망의 버스의 엔진이었고, 주원료였다.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들이 참 많다.
희망의 버스는 깔깔깔이라는 유쾌한 형태를 띄었지만, 안으로는 수없이 많은 노동자민중의 눈물이 가득찬 눈물의 버스였다. 1차 당시 공장문을 나서는 우리에게 양말 하나씩을 나눠주던 조합원들과 가족들의 눈물, 3주만에 인권버스, 성소수자버스, 반값등록금버스, 교수학술, 문화예술인버스, 보건의료, 종교인, 촛불시민, 철거민 버스 등 실제로 전국에서 193대의 버스가 만들어지던 2차의 순간들, 하루 40km를 걸어내려가던 쌍용차 정리해고자들과 소금꽃 천리길의 사람들, 다시 쌍용차 가대위들이 한진 가대위 분들을 만나기 위해 출발시켰던 희망의 열차, 황금같은 휴가를 반납하고 몰려든 1만 2천여명의 사람들의 물결로 장관을 이루었던 3차, 걸어걸어 새벽까지 산복동 고개를 넘어가던 사람들, 4차 때 ‘모든 비정규직들의 행진’이 조직되던 과정, 그간 십수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안타깝게 고공농성에 들어가야 했던 노동자들의 100명의 연대, 그리고 이름없이 희망의 버스를 함께 지켜주었던 지역 희망의 버스의 승객들이 보여주었던 수많은 일들. 그 모든 이들의 뜨거움이 일순 한국사회의 지형을 바꿔나갔다. 모두가 모두에게 감동을 주며 함께 이겨왔던 지난 반년이었다.
 
물론 벽도 많이 느꼈다. 앞으로의 과제다.
재벌의 사설경비대가 되어 철통같이 영도를 지키던 경찰들의 차벽과 폭력을 쉽게 넘을 수 없었다. 정리해고 철회를 무슨 사회주의 운운하며 막아서던 이데올로기의 벽도 높았다.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라고, 훼방버스라고 공격하며, 희망버스의 운동이 한진이라는 단위사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악독한 재벌체재 전반에 대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전반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저항과 분노로 터져나오는 것을 막으려 했던 청와대와 보수수구 언론들의 벽도 완강했다. 재벌총수의 국회 출석은 있을 수 없다고 발악을 하던 전경련과 경총의 반사회적 저항도 넘어야 했다. 6.27 기만적인 노사협의서라는 합법의 울타리도 넘어야 했다. 무엇보다 지난 십수년 우리 내부를 좀먹어왔던 패배주의를 넘어야 했다.
 
결국 우리는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이 안전하게 이 평지로 내려올 수 있게 했다. 아니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 우리 모두의 미래를 조금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왔다. 감사하고 존경한다. 2차를 준비하던 때, 가장 크레인에 대한 탄압이 강경했을 때,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했다고 하던 크레인농성자 박성호의 전언을 들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를 악물던 때가 기억이 난다. 그들의 강고한 투쟁을 받아 우리가 예까지 함께 왔다. 희망의 버스는 그런 우리 모두의 공동운명체였다. 우리 모두가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함께 투쟁한 당사자들이었다. 그 모든 승객들 한 분 한 분이 진정한 우리 시대의 승자들이었다. 그 분들이 앞으로 더 나은 우리 사회를 열어가는 소중한 연대의 힘들이 될 것임을 믿는다.
 
잊지 말 것은 희망의 버스는 이제 막 출발한 새내기 버스라는 것이다. 십수년동안 자행된 수백만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와 900만 명에 이른 비정규직 노예노동 체재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사회적 연대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다시 19분이 죽어간 쌍차로 가야하는 것 아니겠냐고 하던 어떤 벗의 이야기처럼,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이 안전하게 우리 곁으로 내려오던 그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가족들에게서는 열아홉번째의 죽음이 발견되었다. 전화를 드린 문정현 신부님은 그 순간에도 강정에서 경찰들과 대치 중이라고 경황이 없다고 했다. 이 억울함을, 이 분노를, 이 참담함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최소한의 조직도 없어 이름없이 일상속에서 매일매일 짓밟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빼앗긴 노동과 삶의 고통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1400일을 싸우고도 다시 100일 결사투쟁을 결의했다는 재능교육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한을, 5년을 넘게 싸우고 있는 콜트콜텍의 기타만들던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을, 다시 잘려나가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단 한순간도 희망의 버스가 질 것이라고, 수많은 김진숙들이 질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멈추지 말고 다시 함께 달려가자. 더 나은 사회는 가능하다. 이젠 서로가 서로에게 기획자들이 되어주자. 이곳으로 가자고, 저곳으로 가자고, 서로 먼저 제안해주고, 실천해 가자. 1%에 맞선 99%의 승리는 멀지 않고 우리는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지 말자. 우리는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꿈을 잃지 말자. 과거의 썩은 관념들과 잔해들로부터 탄압을 한번씩 더 받을 때마다 나의 우리의 영혼이 한층 더 맑아지고 밝아지는 일이라는 기쁨을 잃지 말자.
다시 한번 이 모든 과정에 함께 했던 백기완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이들께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이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힘이 하나 있다. 물대포도, 최류액도, 경찰의 차벽도, 온갖 허위 이데올로기와 어떤 구조적 벽들로도 그 눈부신 힘의 출현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다움을 실현하는 소박한 순간들이다. 끝내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권력도 명예도 아닌 이것뿐임을 기억한다. 희망의 버스의 어떤 구석 자리든 한 자리는 꼭 나의 자리여야 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 더 기운차게, 밝게, 뚜렷하게, 투철하게 미래를 위한 모든 이들의 투쟁에 함께 하겠다.
 
한 명 한 명이 밝은 빛이 되어 이 모든 과정 지켜내 준 나의 소중한 깔깔깔 벗들에게, 그리고 묵묵히 나를 다시 지켜준 관호와 수정에게 고맙다는 말을 내려놓는다.
자, 이제 다시 웃으며, 끝까지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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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105 - 김진숙 지도위원 착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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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보라>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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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104 - 한진중공업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20111110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지브크레인 아래. 309일의 크레인 농성을 마치고 약속대로 살아서, 걸어서 내려온 김진숙 지도위원.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익 씨도 이렇게 걸어 내려왔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309일 동안 한시도 잊지 못한 이름이 김주익, 곽재규였습니다.
4도크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309일을 어떻게 버텼냐고 얘길 하지만,
그 아픔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 시간들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동지 여러분, 이제 해고자, 비해고자의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100프로 물론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었지만, 저나 여러분들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늘의 이 시간들로 먼저 간 동지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투쟁 기간에 서로간에 앙금이 있었다면 그것도 깨끗이 씻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부터 새로운 시작, 출발입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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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100 - 김진숙 지도위원

20110928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지브크레인. 고공농성 266일차.

한 조합원의 전화를 통해 얼굴 보다. 점점 검은 머리보다 흰 머리가 늘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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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희망버스

20110827 서울 청계광장. 깔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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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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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98 - 김진숙 지도위원

20110820-21 서울광장. 8.20 희망시국대회.

전화통화 내용

고맙습니다, 여러분. 김진숙이 이렇게 많은데 조남호는 하나도 안 보이는군요. 우리 조합원들이 김진숙이고, 여러분들이 김진숙이고, 희망버스를 타시는 분들이 김진숙이고, 정리해고에 반대하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꿈꾸는 모든 분들이 김진숙입니다.

85호 크레인은 서울에도 있고 인천, 수원, 광주, 전주, 울산, 충청도, 강원도, 그리고 제주에도 있습니다. 희망버스가 오기 전까지 한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알았습니까? 희망버스가 없었다면 청문회가 열리지도 않았고 조남호가 영구 닮은 걸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희망버스는 절망 속에 갇혀 있던 우리 조합원들에게 기꺼이 손 내밀어 주셨습니다.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향해 내밀었던 그 손은 참 따뜻했습니다. 그 손은 생명의 손이었고 평화의 손이었습니다.

쓰러진 이를 한 번도 일으켜보지 않은 자들이 어찌 이 손의 따뜻함을 알겠습니까. 우는 사람의 눈물을 한 번도 닦아 준 적이 없는 자들이 어찌 연대의 의미를 알겠습니까. 정리해고가 어떤 건지, 해고된 이후로 노동자들의 삶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저들은 모릅니다.

아홉 살짜리 아이가 정리해고 철회해 달라고, 일곱 살짜리 아이가 조남호 아저씨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 달라고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편지를 쓰는 나라에 우리가 삽니다. 같은 사원아파트에서 태어나 같이 자라고 같은 학교를 다니지만 아빠가 산 자, 죽은 자로 나뉘면서 친구마저 잃은 아이들입니다.

검은 옷 입은 용역들에게 아빠가 끌려나오는 걸 본 이후 검은 옷 입은 사람만 보면 운다는 아이들입니다. 가족들을 그려보라니까 아빠가 없는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소원이 뭐냐고 물으니 아빠랑 같이 목욕가는 거라는 저 아이들. 목이 마르면 정수기로 가는 게 아니라 화장실 수도꼭지 물을 받아먹는 저 아이들. 이 슬픈 현실이 언제까지 이어져야 합니까. 눈이 짓무르도록 울었던 저 아이의 엄마들이 얼마나 더 울어야 합니까.

길에서 울고 집에서 울던 저 아이들이 급식 때문에 학교에서마저 울어야 하는 차별의 대물림은 끝내야 합니다. 생목숨을 죽여 놓고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를 모른다는 저들의 뻔뻔함을 끝내야 합니다. 심호흡을 하면서 뜸을 들이고 최대한 어눌하게 말하라는 각본에 따라 ‘영구 없다’ 놀이를 하는 저들의 가면을 이제는 벗겨야 합니다. 그 영구만들기 프로젝트에는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인내력과의 싸움이다. 시종일관 똑같은 말을 시종일관 어눌하게.’ 과연 인내의 대마왕이십니다.

저 사람 잡는 인내를 꺾으려면 4차 희망버스는 더 커져야 합니다. 훨씬 더 강해져야 합니다. 크레인 중간지점 사수대 신동순 동지가 오늘로 단식 6일쨉니다. 오늘까지 단식을 만류하느라 조합원들에게도 알리지를 못했는데 결국 신 동지의 뜻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리해고 철회는 물론 용역들이 밥그릇까지 열어보고 금속탐지기를 들고 생필품마저 금지하는 비인간적인 처우와 이 크레인을 바닷가 쪽으로 끌고 가려는 시도에 온몸으로 맞서는 단식입니다.

희망버스 기획단과 승객 여러분들의 뜨거운 열정과 변함없는 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저는 설날을 여기서 보냈습니다. 우리 사수대 동지들 추석만큼은 가족들과 보내게 해주십시오. 4차 희망버스가 그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더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십시오. 희망버스가 승리의 버스가 되는 그날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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