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283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20130105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앞. 다시 희망만들기.

 

강서야. 오늘은 내가 크레인에 오른 지 만 2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 영하 13도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널 지키겠다고 했는데, 너는 가고 나는 남았다.

강서야. 네가 없어도 해는 뜨고 네가 없는 세상에서도 시간은 흘러 그렇게 16일이 지났다. 널 냉동실에 눕혀놓고 꾸역꾸역 밥을 먹는 우린 이 겨울이 참 춥다.

강서야. 재작년 겨울, 내가 출근투쟁을 할 때, 주머니에 따뜻한 음료를 넣어주던 강서야. 그때 그 두유 한 병이 참 따뜻했다는 말을 아직 하지도 못했는데 그 말을 들어줄 너는 없다. 미처 고맙다는 말을 건넬 틈도 없이 너는 출근을 했고 정리해고라는 살생부가 떨어지기 전, 그 아침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 아침처럼 아빠 다녀오시라는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하는 아침을 다시 맞는 일이 이렇게 힘들구나.

해가 뜨기도 전, 이른 아침 담배연기처럼 입김을 내뿜으며 출근을 했던 조합원들은 해고됐고, 네가 출근을 했던 문은 봉쇄되고 그 봉쇄된 문 앞엔 너의 빈소가 차려졌다. 이력서에 붙였던 사진은 영정이 되고 그 영정 앞에 다시 상복을 입은 사람들. 그 광경이 기가 막힐 뿐이다.

2003년, 네 나이 스물여섯. 그때 네가 입었던 상복을 너의 동지들이 다시 입었다. 9년 전, 그때만 하더라도 김주익이라는 사람이 왜 목숨까지 던져야 했는지, 11살, 9살, 7살 아이를 두고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는지 다 이해하긴 힘들었을 거야.

김주익 지회장을 따라간 곽재규라는 사람의 마음을 다 헤아리기도 어려웠을 거야. 그걸로 끝이어야 했다. 다시는 이런 불행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 두 사람의 빈소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던 경영진의 사과는 진심이어야 했다. 복지관을 지어주며 화해의 손을 내밀던 그 웃음도 진심이어야 했다. 그러나 8년 만에 저들은 다시 정리해고의 칼날을 휘둘렀고 400명이 잘렸다. 이제는 화합해야 할 때라고 말하던 그 입으로 저들은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했고 웃으며 악수를 건네던 그 손으로 복지관 건물을 하나하나 폐쇄했다.

내 전화기에는 2년만에 복직하던 날, 파이팅을 외치며 환하게 웃던 너의 사진이 남아있다. 아마도 네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웃는 모습. 그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공장으로 들어갔니? 살아서는 넘을 수 없었던 공장의 벽을 그렇게 넘어갔니? 그게 마지막이라는 것도, 시퍼런 나이의 너를 열사라고 부르는 것도 우린 아직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이렇게 막막하다.

네가 떠나던 날 새벽, 목이 졸리는 꿈을 꾸었다는 동순이 형님. 동생들을 살리고 싶어 크레인 위에서 40일 단식을 했던 그 형님이 십분만 일찍 사무실로 갔으면 널 살렸을 거라고 가슴을 친다. 네가 잠든 모습을 보고 깨우지 않고 출근 선전전을 나갔던 동지들이 평생 짊어져야 할 상처는 아프고 깊다. 눈도 벌겋고 가슴도 벌건 채 소리 내 울지도 못하는 사람들. 널 땅에 묻고 나면 그때는 소리내 울 수 있을까.

그동안 필리핀 수빅으로 수주를 다 빼돌리고 영도공장엔 4년이 넘도록 수주 한척을 못 받았던 무능한 경영진들은 이제 수주를 받을만하니 또다시 분규를 조장한다고 게거품을 문다. 끝까지 너의 죽음을 개인적인 생활고로 모욕하는 저들은 개인적인 죽음에 왜 여당대표까지 조문을 오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저들의 횡포에 졌다고 너는 말했지만 그 말이 포기가 아님을 우린 안다. 넌 누구보다 강했으니까. 넌 누구보다 의연했으니까. 그리고 넌 누구보다 따뜻했으니까.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싸우고 싶었던 네 몫까지 우리가 싸울게. 강서야.

"나는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자로 살아간다. 내 아들 또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척박한 노동조건. 그러나 어제 하루는 광활한 우주 속 노동자의 지구를 찾은 듯한….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연대해 준 동지들은 하루겠지만 나에겐 미래다.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동지들. 투쟁!"

재작년 6월 12일 희망버스가 처음 다녀간 다음 날, 강서가 트위터에 남긴 글입니다. 이 추운 날 먼 길을 다시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너무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이 오신 걸 알면 강서도 많이 기뻐할 겁니다. 살아서 얼싸안고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복직하는 날이라고 설레며 출근했던 그 아침이 그대로 이어졌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강서의 말대로 조합원들이 다시 민주노조로 돌아오고 우리 조합원들이 다시 공장에서 땀 흘려 일하게 되는 날. 그날 강서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저항하는 사람들을 끌고 가 6개월을 고문하고 하루만에 사형을 집행한 유신 때도 싸웠고, 민주노조했다고 대공분실에 끌고 가 거꾸로 매달았던 군사독재 때도 싸웠습니다. 그게 역삽니다. 철탑에서 노동자의 존엄성을 지키는 노동자들이 있고 그리고 이렇게 함께하는 우리가 있습니다. 목숨을 건 철탑농성을 기만하고 죽음마저 외면하는 저들과 끝까지 싸워 우리 힘으로 동지들을 내려오게 하고 강서를 편히 보내줍시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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