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105 - 김진숙 지도위원 착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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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보라>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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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104 - 한진중공업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20111110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지브크레인 아래. 309일의 크레인 농성을 마치고 약속대로 살아서, 걸어서 내려온 김진숙 지도위원.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익 씨도 이렇게 걸어 내려왔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309일 동안 한시도 잊지 못한 이름이 김주익, 곽재규였습니다.
4도크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309일을 어떻게 버텼냐고 얘길 하지만,
그 아픔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 시간들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동지 여러분, 이제 해고자, 비해고자의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100프로 물론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었지만, 저나 여러분들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늘의 이 시간들로 먼저 간 동지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투쟁 기간에 서로간에 앙금이 있었다면 그것도 깨끗이 씻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부터 새로운 시작, 출발입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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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96 - 김진숙, 한진중공업

20110724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200일. ‘생명, 평화 그리고 소통을 위한 희망 시국회의 200’

“(발언)준비를 많이 했는데 배가 고파서 못 하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 어르신들, 동지 여러분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스물 여섯에 해고돼서 이제 쉰 둘. 저는 반평생을 해고자로 살았습니다. 맛있는 것도, 좋은 옷도 다 복직하면 먹자, 복직하면 사 입자, 복직하면 운전면허 따서 좋은 데도 가 보자 그렇게 오십이 넘었습니다. 이런 아픔들을 제 동료에게, 동생들에게 다시 물려줄 수는 없었습니다. 불과 2년 남짓한 사이에 3천 명이 쫓겨난 이 공장에서 저는 (더는)잃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절망은 결코 희망을 꺾을 수 없습니다. (농성)100일이 되는 날 심었던 방울토마토를 오늘 수확했습니다. 이 거친 곳에서도 희망은 그렇게 피어납니다. 잘 지키고 잘 키워내겠습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십시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고맙습니다.”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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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92 - 한진중공업지회 김진숙 지도위원

20110627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지브크레인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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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85호 지브 크레인 중간, 이용대 한진중공업지회 대의원

20110110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이용대 대의원은 김진숙 지도위원과 같은 파트 동료였다. 벌써 이십 수 년 전 이야기다. 그 동료를 위해 85호 지브 크레인 중간에서 그를 지키고 있다. 그가 김주익 전 지회장처럼 죽어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살아서 걸어내려올 수 있도록 지키고 있다. 밥을 올려주고 고구마를 올려주고 소식을 올려주고 있다. 1월 6일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오른 뒤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날마다 김 지도위원이 잠에 들 때까지 이 자리를 지킨다. "내만 찾아싼다"라고 불평하지만, 금새 "여기 있는 게 내 맘이 편하다"라고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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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20110110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1월 6일 새벽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85호 지브 크레인에 올랐다. 2003년 김주익 당시 한진중공업지회장이 구조조정 중단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129일 동안 농성하다 목을 매고 자결한 장소다.  1월 12일 한진중공업 사측은 290명 정리해고 명단을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 신청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남긴 글]

1월 3일 아침, 침낭도 아니고 이불을 들고 출근하시는 아저씨를 봤습니다.
새해 첫 출근날 노숙농성을 해야 하는 아저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 겨울 시청광장 찬바닥에서 밤을 지새운다는 가장에게 이불보따리를 싸줬던
마누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살고 싶은 겁니다. 다들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남고 싶은 겁니다.
지난 2월 26일. 구조조정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이후 한진에선 3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짤렸고, 설계실이 폐쇄됐고, 울산공장이 폐쇄됐고,
다대포도 곧 그럴 것이고,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강제휴직 당했습니다.
명퇴압박에 시달리던 박범수, 손규열 두 분이 같은 사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400명을 또 짜르겠답니다. 하청까지 천 명이 넘게 짤리겠지요.
흑자기업 한진중공업에서 채 1년도 안 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그 파리목숨들을 안주삼아 회장님과 아드님은 배당금 176억으로
질펀한 잔치를 벌이셨습니다. 정리해고 발표 다음 날.

2003년에도 사측이 노사합의를 어기는 바람에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여기 또 한마리의 파리목숨이 불나방처럼 크레인 위로 기어오릅니다.
스물 한 살에 입사한 이후 한진과 참 질긴 악연을 이어왔습니다.
스물 여섯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세 번 끌려갔다 오고, 징역 두 번 갔다 오고,
수배생활 5년 하고, 부산시내 경찰서 다 다녀보고, 청춘이 그렇게 흘러가고
쉰 두 살이 됐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생각했는데 가장 큰 고비가 남았네요.
평범치 못한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결단을 앞두고 가장 많이 번민했습니다. 85호 크레인의 의미를 알기에...
지난 1년. 앉아도 바늘방석이었고 누워도 가시이불 이었습니다.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 앉아야 했던 불면의 밤들.
이렇게 조합원들 짤려나가는 거 눈뜨고 볼 수만은 없는 거 아닙니까.
우리 조합원들 운명이 뻔한데 앉아서 당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정면으로 붙어야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한진조합원들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해서 우리 조합원들 지킬 겁니다.
쌍용차는 옥쇄파업 때문에 분열된 게 아니라 명단이 발표되고 난 이후
산자 죽은자로 갈라져 투쟁이 힘들어진 겁니다.

지난 일요일.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보일러를 켰습니다.
양말을 신고도 발이 시려웠는데 바닥이 참 따뜻했습니다.
따뜻한 방바닥을 두고 나서는 일도 이리 막막하고 아까운데
주익 씨는..  재규형은 얼마나 밟히는 것도 많고 아까운 것도 많았을까요.
목이 메이게 부르고 또 불러보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                        
                                                                            --- 김진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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