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287 - 김정우 쌍용자동차지부장
20130104 서울 정동 민주노총.
20130105 서울 대한문 앞.
20130104 서울 정동 민주노총.
20130105 서울 대한문 앞.
20130105 울산 현대자동차 명촌정문 주차장 안. 머리모양으로 일어난 분란.
20130105 울산 현대자동차 명촌정문 주차장 안.
20130105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앞. 다시 희망만들기.
강서야. 오늘은 내가 크레인에 오른 지 만 2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 영하 13도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널 지키겠다고 했는데, 너는 가고 나는 남았다.
강서야. 네가 없어도 해는 뜨고 네가 없는 세상에서도 시간은 흘러 그렇게 16일이 지났다. 널 냉동실에 눕혀놓고 꾸역꾸역 밥을 먹는 우린 이 겨울이 참 춥다.
강서야. 재작년 겨울, 내가 출근투쟁을 할 때, 주머니에 따뜻한 음료를 넣어주던 강서야. 그때 그 두유 한 병이 참 따뜻했다는 말을 아직 하지도 못했는데 그 말을 들어줄 너는 없다. 미처 고맙다는 말을 건넬 틈도 없이 너는 출근을 했고 정리해고라는 살생부가 떨어지기 전, 그 아침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 아침처럼 아빠 다녀오시라는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하는 아침을 다시 맞는 일이 이렇게 힘들구나.
해가 뜨기도 전, 이른 아침 담배연기처럼 입김을 내뿜으며 출근을 했던 조합원들은 해고됐고, 네가 출근을 했던 문은 봉쇄되고 그 봉쇄된 문 앞엔 너의 빈소가 차려졌다. 이력서에 붙였던 사진은 영정이 되고 그 영정 앞에 다시 상복을 입은 사람들. 그 광경이 기가 막힐 뿐이다.
2003년, 네 나이 스물여섯. 그때 네가 입었던 상복을 너의 동지들이 다시 입었다. 9년 전, 그때만 하더라도 김주익이라는 사람이 왜 목숨까지 던져야 했는지, 11살, 9살, 7살 아이를 두고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는지 다 이해하긴 힘들었을 거야.
김주익 지회장을 따라간 곽재규라는 사람의 마음을 다 헤아리기도 어려웠을 거야. 그걸로 끝이어야 했다. 다시는 이런 불행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 두 사람의 빈소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던 경영진의 사과는 진심이어야 했다. 복지관을 지어주며 화해의 손을 내밀던 그 웃음도 진심이어야 했다. 그러나 8년 만에 저들은 다시 정리해고의 칼날을 휘둘렀고 400명이 잘렸다. 이제는 화합해야 할 때라고 말하던 그 입으로 저들은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했고 웃으며 악수를 건네던 그 손으로 복지관 건물을 하나하나 폐쇄했다.
내 전화기에는 2년만에 복직하던 날, 파이팅을 외치며 환하게 웃던 너의 사진이 남아있다. 아마도 네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웃는 모습. 그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공장으로 들어갔니? 살아서는 넘을 수 없었던 공장의 벽을 그렇게 넘어갔니? 그게 마지막이라는 것도, 시퍼런 나이의 너를 열사라고 부르는 것도 우린 아직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이렇게 막막하다.
네가 떠나던 날 새벽, 목이 졸리는 꿈을 꾸었다는 동순이 형님. 동생들을 살리고 싶어 크레인 위에서 40일 단식을 했던 그 형님이 십분만 일찍 사무실로 갔으면 널 살렸을 거라고 가슴을 친다. 네가 잠든 모습을 보고 깨우지 않고 출근 선전전을 나갔던 동지들이 평생 짊어져야 할 상처는 아프고 깊다. 눈도 벌겋고 가슴도 벌건 채 소리 내 울지도 못하는 사람들. 널 땅에 묻고 나면 그때는 소리내 울 수 있을까.
그동안 필리핀 수빅으로 수주를 다 빼돌리고 영도공장엔 4년이 넘도록 수주 한척을 못 받았던 무능한 경영진들은 이제 수주를 받을만하니 또다시 분규를 조장한다고 게거품을 문다. 끝까지 너의 죽음을 개인적인 생활고로 모욕하는 저들은 개인적인 죽음에 왜 여당대표까지 조문을 오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저들의 횡포에 졌다고 너는 말했지만 그 말이 포기가 아님을 우린 안다. 넌 누구보다 강했으니까. 넌 누구보다 의연했으니까. 그리고 넌 누구보다 따뜻했으니까.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싸우고 싶었던 네 몫까지 우리가 싸울게. 강서야.
"나는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자로 살아간다. 내 아들 또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척박한 노동조건. 그러나 어제 하루는 광활한 우주 속 노동자의 지구를 찾은 듯한….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연대해 준 동지들은 하루겠지만 나에겐 미래다.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동지들. 투쟁!"
재작년 6월 12일 희망버스가 처음 다녀간 다음 날, 강서가 트위터에 남긴 글입니다. 이 추운 날 먼 길을 다시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너무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이 오신 걸 알면 강서도 많이 기뻐할 겁니다. 살아서 얼싸안고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복직하는 날이라고 설레며 출근했던 그 아침이 그대로 이어졌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강서의 말대로 조합원들이 다시 민주노조로 돌아오고 우리 조합원들이 다시 공장에서 땀 흘려 일하게 되는 날. 그날 강서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저항하는 사람들을 끌고 가 6개월을 고문하고 하루만에 사형을 집행한 유신 때도 싸웠고, 민주노조했다고 대공분실에 끌고 가 거꾸로 매달았던 군사독재 때도 싸웠습니다. 그게 역삽니다. 철탑에서 노동자의 존엄성을 지키는 노동자들이 있고 그리고 이렇게 함께하는 우리가 있습니다. 목숨을 건 철탑농성을 기만하고 죽음마저 외면하는 저들과 끝까지 싸워 우리 힘으로 동지들을 내려오게 하고 강서를 편히 보내줍시다. 투쟁.
20121229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 건너편 송전탑.
문기주 쌍용자동차지부 정비지회장
복기성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
한상균 전 쌍용자동차지부장
20121221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본사 앞. 재능 투쟁 5년 집회.
20121122 서울 대한문 앞 농성장 앞.
20121208 서울광장 민중대회.
20121201 서울 광화문광장.
20121208 서울 대한문 옆 농성장 안.
20121201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20121120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 앞 철탑.
20121120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 앞 철탑.
20121120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 앞 철탑.
20121120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 앞 철탑.
20121120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 앞 철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