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교육'에 해당되는 글 35건

  1.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41 - 재능교육지부 유명자 2013.06.20
  2.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16 - 여민희, 오수영 재능교육지부 조합원 종탑 99일 2013.05.16
  3.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00 - 이인근 콜텍지회장 2013.05.14
  4.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73 - 재능교육지부 유명자 2013.04.09
  5.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72 - 여민희, 오수영 재능교육 조합원 종탑고공농성 50일 2013.03.29
  6.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48 - 재능투쟁 1,895일 2013.02.27
  7.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28 - 오수영, 여민희 재능교육 노동자 2013.02.18
  8.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27 - 유득규 학습지노조 사무처장 2013.02.18
  9.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23 - 재능교육지부 여민희, 오수영 조합원 종탑 고공농성 7일차 2013.02.13
  10.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22 - 유명자 재능교육지부장 2013.02.13
  11.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20 - 재능교육지부 여민희, 오수영 조합원 고공농성 첫날 2013.02.07
  12.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04 - 유명자 재능교육지부장, 김정우 쌍용차지부장 2013.01.25
  13.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03 - 유명자 재능교육지부장 2013.01.25
  14.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280 - 유명자 재능교육지부장 투쟁 5년 2012.12.25
  15.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277 - 유흥희 기륭분회장, 유명자 재능교육지부장 2012.12.09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41 - 재능교육지부 유명자




20130618 서울 대한문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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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16 - 여민희, 오수영 재능교육지부 조합원 종탑 99일


20130515 서울 종로구 혜화동. 종탑 농성 99일째.


[혜화동성당 종탑농성 100일입니다]


여민희


발자국 하나 없이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던 종탑 꼭대기, 눈부신 빛과 함께 맞아주었던 성당의 십자가는 두려움으로 어두운 계단을 올랐던 우리에게 ‘재능투쟁 반드시 승리하고 아이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잘왔어!’ 라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재능농성투쟁 1875일차가 되던 지난 2월 6일, 우리는 영하 15도의 한파 속에 침낭 한 장 없이 겨울 점퍼를 몇 겹으로 껴입은 채 혜화동성당 종탑 꼭대기에 올랐습니다.


2011년 김진숙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85크레인에 올랐을 때도, 2012년 울산에서, 평택에서 노동자들이 15만 4천볼트 송전탑에 올랐을 때도, 아산에서 노동자가 목에 밧줄을 걸고 굴다리에 올랐을 때도 내가 저들처럼 고공농성이라는 것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높이에서 추위를 어떻게 견뎌낼 것이며, 씻는 것은, 화장실은, 그리고 사람인데.. 고립된 생활을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하늘마저 비좁아질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서럽기만 했습니다.


6년째 거리에서 농성을 하며 겪은 험하고 험했던 고통 속에 고공이라는 극단의 선택은 ‘내가, 우리가 살 수 있는 최상의 선택’ 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습니다. 1800일이 훌쩍 넘은 거리 노숙농성, 삭발, 단식.. 그리고 함께 일했던 동료가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런 우리가 살아야겠다고 선택한 방법이었습니다. 살아서 회사가 일방적으로 파기한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하고 노동조합의 이름을 가지고 아이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혜화동성당 종탑 꼭대기에 오른 지 99일째, 붉고 탐스러운 꽃망울들이 소리없이 모습을 감추고 초록의 기운을 더해가는 5월이 되었습니다. 한결 가벼워진 차림새의 사람들을 보면서 봄의 따뜻한 기운을 느끼지만, 해가 지는 시간이 되면 종탑에 오른 첫 날 입었던 겨울점퍼를 입어야만 합니다. 밧줄로 올려주는 밥을 먹고, 오래된 이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거센 바람에 공포심을 묻으며 잠자리에 들어야 하고, 물티슈로 몸을 닦아내고, 어쩔 수 없이 해결해야 하는 생리적인 현상들까지.. 수치심 따위를 안고 있을 여유가 없으니 ‘뭐 이 정도 쯤이야..’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그렇게 일상에서 분리된 생활에 제법 익숙해졌다고 스스로 기특해 하지만 보고 싶은 사람, 그리운 사람을 볼 수 없는 사무침에 밤을 지새우기도 합 니다. 마주 서 있는 재능교육 본사건물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정당한 투쟁이 반드시 승리할 것임을 되새기지만 문득문득 다가오는 기약없는 극단적인 상황에 절망감을 다스리지 못하기도 합 니다. 


백 한 배를 시작한 지 51일이 되었습니다. 발원문을 들으며 백 배를 하고, 마지막에는 나 자신을 위한 절을 합니다. “나를 견디겠습니다.” “나를 버티겠습니다.” “내가 이겨내겠습니다.” 재능자본과의 싸움은 얼마든지 버티고 견딜 수 있지만, 이곳 종탑 꼭대기에 있는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지킬 주문이 필요했습니다. 고공이라는 곳은 희망과 절망, 소통과 단절, 관심과 고립이 공재하는 공간이니까요..


그리고 사람들을 만납니다. 멀리서 손을 흔들고 무전기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눌 뿐이지만, 그래도 잠시 짬을 내서 들러주는 사람들, 퇴근길에 들렀다 가는 사람들,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 갑자기 생각나서 보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 그리고 매일 저녁 문화제를 합니다. 우리가 외롭지 않게 혜화동 언덕길을 채우고 촛불을 밝혀줍니다. 이제는 해가 길어져 저녁 문화제에서 사람들의 형체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그래도 누구인지,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어서 망원경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눈에 담습니다. 그리고 메시지로 응원해주는 사람들.. 따뜻한 사람들의 온기가 하루하루 버틸 힘이 되 었고, 그 소중한 희망의 메시지로 씩씩하게 백 일을 채웠습니다.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이 아직 종탑 꼭대기에 있고, 거리에 있습니다. 혜화동성당 종탑에 오르고 100일이 되었습니다. 재능지부 농성투쟁이 6월 11일이면 2000일이 됩니다.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달려온 2000일, 함께 투쟁하고 함께 눈물을 흘렸던 고마운 사람들과 이젠 승리와 웃음을 나눌 날을 기다립니다. 


학습지교사는 분명 노동자입니다. 우리의 요구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전원 원직복직] 반드시 쟁취하겠습니다. 그래서 학습지교사노동자로, 노동조합의 조합원으로 당당하게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동지들..


[종탑농성 100일]


오수영


종탑에 올라온 지 내일이면 100일입니다. 

처음 종탑에 올라왔을 때 동지들께 얘기했습니다. 절망해서 벼랑으로 내몰려서 올라온 것이 아니라 승리의 문을 두드리러 올라왔다고 말했습니다.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좀 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50일차 됐을 땐 사력을 다해 연대의 물을 단결의 물을 끌어올려 나무들처럼 승리의 봄을 맞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제 봄이 가고 여름이 옵니다.


종탑에 올라온 이후 처음으로 사측과 3차례의 교섭을 진행했습니다. 16차 교섭에서 재능교육은 노동조합의 요구안이 현실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서 교섭을 결렬시켰습니다. 어렵게 다시열린 2박3일간의 17차 교섭에선 또 다시 복귀 후 단체협약을 시작하겠다는 같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100일이 지났지만 단체협약 체결과 관련한 재능교육 사측의 입장은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변화가 있다면 돌아가신 이지현 조합원의 원직복직을 ‘검토’하겠다는 답변 뿐이었습니다. 1 


100일을 맞는 마음이 어떤지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 저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함께 종탑에서 100일을 견뎌준 민희를 칭찬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종탑에 오른 이후 편안한 잠 한 번을 자지 못하면서도 열심히 투쟁해 온 우리 조합원들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100일 내내 촛불을 밝혀주고 함께 웃고 함께 울어준 동지들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엄마가 없는 시간 동안 건강하게 밝게 잘 자라준 우리 아들 채운이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100일을 우리만 견딘 것이 아니라 동지들과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9살 채운이가 견뎠습니다. 눈물과 분노와 고립감을 떨쳐버리고 우리가 함께 투쟁하고 있다는 마음을 꼭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견뎠습니다.


종탑농성이 장기화 국면으로 넘어갔다고 얘기합니다. 폭염과 장마와 태풍을 우리의 몸이 견딜 수 있을까 걱정합니다. 하지만 견디겠습니다. 몸이 아파서 내려가지 않도록 정신을 모으고 몸을 다스리겠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우리 조합원들 모두 그런 결의로 여름을 맞겠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의 극단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잡은 손을 더욱 굳게 잡아주십시오. 동지들의 손 꼭잡고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복직 합의안 반드시 쟁취해 환하게 웃으며 내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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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00 - 이인근 콜텍지회장





20130507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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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73 - 재능교육지부 유명자



20130404 서울 대한문 옆 쌍용차 분향소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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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72 - 여민희, 오수영 재능교육 조합원 종탑고공농성 50일



20130327 서울 종로구 혜화동성당. 


재능교육 투쟁 1,924일차, 종탑고공농성 50일이 됐다.

상황이 좋진 않다. 날선 공방들이 오간다. 이럴 때 연대는 어떻게 해야 하고, 사진은 뭘 찍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깊어진다.

사람 사이의 관계란 이렇게 어려운 것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

기륭 투쟁 때 이런 일이 있었다면 참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이 저 위에 있기 때문에 간다. 인간의 존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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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48 - 재능투쟁 1,895일

 

 

 

 

20130226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앞.

 

오수영

날씨가 많이 우울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오늘 오전부터 인터뷰를 상당히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받는 질문이 1895일이라는 시간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한테 저 개인한테 1895일이라는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나 되돌아봤습니다.

 

오늘 오후에. 제가 그 투쟁을 처음 시작했을 때 한솔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해고당했고 농성투쟁을 하던 와중이었습니다. 어린 아들을 어머님한테 맡기고 두 부부가 거리에 나와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1895일이라는 시간은 우리 조합원들한테 악몽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한편으로 아, 사람이 이런 시간을 거리에서 일상을 모두 포기하고 버틸 수 있구나. 정말 인간이 노동자가 위대하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1895일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종탑에 올라온 지 21일째입니다. 이 문제가 언제 해결될지 아직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그 수많은 시간을 재능교육에게 무참히 빼앗기고 학살당하고 망가졌던 그 시간을 그냥 과거의 시간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더 많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 시간을 다시 되돌아봤을 때 그때 정말 힘들고 아팠지만 내가 잘했구나 그래서 힘든 오늘을 다시 살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구나 라고 돌아볼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이십대 말 가장 빛났던 시간에 재능교육에 들어와서 십 년 이십 년을 함께한 우리 조합원들의 그 빛났던 청춘이 이제 금년이 접어드는 이 시점에 결코 잘못된 게 아니라 우리가 했던 게 옳았고 그것이 학습지 교사의 노동기본권 보장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 한 걸음을 보탰구나 라는 이야기를 꼭 듣고 싶습니다. 반드시 승리하는 그날 땅으로 내려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민희

반갑습니다. 1895일. 여러 동지들이 걱정하셨던 대로 1895일을 넘기지 않고 저희가 지상을 밟게 되었더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사실 저희는 누구보다 재능자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여러 가지 질문을 받으면서 1895일 내가 재능교육에 처음 들어왔을 때, 노동조합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리고 이 투쟁이 시작되었을 때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1998년 2월에 재능교육에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99년 12월에 재능교육 교사 노동조합이 설립되었고 저희가 33일간의 파업투쟁을 통해서 노동조합의 깃발을 현장에 학습지 선생님들 특수고용 노동자 최초의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제가 노동조합 없이 생활했던 2년 가까이, 그리고 그 후 노동조합과 함께 생활했던 학습지 선생님으로의 생활,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저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 우리 조합원들 모두 한마음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노동조합의 조합원으로 내가 학습지 선생님, 재능교육의 선생님이었을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제가 반드시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하고 현장에 재능교육에 노동조합의 깃발을 가지고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저는 제가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제가 재능교육에 입사해서 제 청춘을 바쳐 일했던 가장 소중한 시간을 찾고 싶습니다. 제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 저의 동료들도 행복했었고 제가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면 다시 재능 선생님들 모두 행복한 시간이 될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분명 저는 단체협약 원상회복하고 노동조합의 깃발을 가지고 현장에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저희가 플래카드에 붙어 있듯이 11명의 복직 절대 원하지 않습니다. 이지현 교사를 포함한 이 투쟁 과정에서 회사 직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어쩔 수 없이 아이들과 헤어져야 했던 그리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 암 투쟁의 고통까지 겪어야 했던 이지현 조합원의 몫까지 당당히 챙겨서 현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 중의 하나지만 이지현 조합원이 병상에서 저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너는 나보다 낫잖아.” 그 의미는 제가 싸울 수 있고 제가 다시 현장에 돌아가서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과 함께 수업할 수 있다는 이지현 조합원의 간절한 바람이 저한테 전해졌습니다. 저는 이지현 조합원의 뜻이 분명 있었기에 이지현 조합원의 복직을 받아들이고 이지현 조합원의 복직을 가지고 현장에 같이 이지현 조합원과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소망하는 것. 이지현 조합원에게 단체협약안 가지고, 이지현 조합원의 계약서 가지고 이지현 조합원을 가장 먼저 찾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내려가기 위해서 이곳에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절대 그냥 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단체협약 원상회복하고 해고자 전원 복직하고 내려가겠습니다. 1895일, 수식에 불과한 숫자에 불과한 그 숫자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싸움은 이길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고통스럽고 조금 더 힘들겠지만 저와 저희 조합원들, 저희 조합원들 12명 이름으로 현장에 반드시 돌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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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28 - 오수영, 여민희 재능교육 노동자





20130217 서울 혜화동성당. 재능투쟁 1886일차, 철탑 고공농성 1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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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27 - 유득규 학습지노조 사무처장


20130217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앞. 재능투쟁 1886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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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23 - 재능교육지부 여민희, 오수영 조합원 종탑 고공농성 7일차




20130212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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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22 - 유명자 재능교육지부장




20130212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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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20 - 재능교육지부 여민희, 오수영 조합원 고공농성 첫날






20130206 서울 혜화동 성당 종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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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04 - 유명자 재능교육지부장, 김정우 쌍용차지부장







20130124 서울 강서구 KBS 스포츠월드. 민주노총 정기 대의원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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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03 - 유명자 재능교육지부장



20130124 서울 강서구 등촌동 콜트본사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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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280 - 유명자 재능교육지부장 투쟁 5년




20121221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본사 앞. 투쟁 5년에 눈이 내리다.

 

11월 1일날 저희가 행정법원 1심, 저기 현수막에도 걸려 있듯이 학습지노동자 노동자 맞고, 그리고 이들이 만든 노동조합 정당하다, 그래서 재능교육이 노동조합의 와해를 목적으로 조합원을 상대로 한 계약해지는 무효이다 이렇게 판결이 났습니다. 이 판결이 나는 날 저희 노동조합 만들 때부터 함께했던 모 동지가 저에게 고생했다면서 판결문 나오면 판결문 들고 도봉산에 가자고 했습니다. 아직 못 갔습니다.

 

아시는 동지들이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해고자로, 재능교육이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해고한 저희 열두 명의 해고자 중에 한 동지가 올 1월 결국은 몇 달 암 투병을 하고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 동지가 너무나 좋아했던 도봉산 자락에 그 동지가 뿌려져 있습니다. 이 동지가 요즘에 저보고 계속 채근을 합니다. 빨리 한 번 가자니까 왜 안 가냐 그래서 5년 투쟁 집회 마무리하면 날 잡아서 한 번 가자라고 얘기했습니다. 12월 말에 아름다운 노동운동을 꿈 꾸며 그리고 이승에 남아있을 많은 동지들이 해달라고 염원하며 또 한 동지가 떠나갔습니다. 다음 주에 또 모란공원에서 고 박상윤 동지의 추도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 한 달 뒤에 노동조합 활동하다 단식 후유증으로 위암으로 돌아가신 우리 고 정종태 위원장의 또 추도식이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뭔지 도대체 이 노조 하나 지키려고 하는 게 왜 이렇게 목숨을 걸면서까지 힘든 일인지 투쟁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우리 콜트·콜텍지회 동지들이 2천일이 딱 넘어서는 첫날 다시 시작한다 하면서 투쟁 1일차 2일차 이렇게 손꼽았던 적이 있습니다. 저희 만 5년. 예 딱 정권이 한 번 뒤바뀌었습니다. '야 이자식들아. 정권이 바뀌었어. 세상이 바뀌었어' 라는 말을 들으면서 시작한 그 농성 오늘로 딱 만 5년입니다. 2007년 12월 21일 단지 임금이 계약된 제도를 좀 개정해 보자고 시작했던 싸움, 오늘로 만 5년이 됐습니다.

 

노동조합이 질긴 건지, 악질 재능교육 자본이 질긴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들고 초창기에 우리 보고 당당하게 얘기했습니다. "당신들이 노동조합에서 말하는 '질긴 놈이 이긴다' 우리가 보여주겠다"라고 노무팀 팀장이었던 작자가 저와 만난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아주 비아냥거리면서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예. 끝까지 싸워 봅시다. 정말 저들이 질긴지 우리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서 투쟁할 수 있는 질김이 누구한테 더 오래 있을 수 있는지 끝까지 반드시 승리할 때까지 싸워보겠습니다. 동지들과 함께라면 끝까지 한 번 해보겠습니다. 투쟁!

 

- 유명자 재능교육지부장, 투쟁 5년 집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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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277 - 유흥희 기륭분회장, 유명자 재능교육지부장


20121201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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