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96 - 김진숙, 한진중공업

20110724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200일. ‘생명, 평화 그리고 소통을 위한 희망 시국회의 200’

“(발언)준비를 많이 했는데 배가 고파서 못 하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 어르신들, 동지 여러분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스물 여섯에 해고돼서 이제 쉰 둘. 저는 반평생을 해고자로 살았습니다. 맛있는 것도, 좋은 옷도 다 복직하면 먹자, 복직하면 사 입자, 복직하면 운전면허 따서 좋은 데도 가 보자 그렇게 오십이 넘었습니다. 이런 아픔들을 제 동료에게, 동생들에게 다시 물려줄 수는 없었습니다. 불과 2년 남짓한 사이에 3천 명이 쫓겨난 이 공장에서 저는 (더는)잃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절망은 결코 희망을 꺾을 수 없습니다. (농성)100일이 되는 날 심었던 방울토마토를 오늘 수확했습니다. 이 거친 곳에서도 희망은 그렇게 피어납니다. 잘 지키고 잘 키워내겠습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십시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고맙습니다.”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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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

20110705 경찰청장 접견실.

경찰 투입 중단! 희망의 버스 탄압 중단! 정당, 종교, 사회단체 대표자 및 희망의 버스 참가자 긴급 기자회견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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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92 - 한진중공업지회 김진숙 지도위원

20110627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지브크레인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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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91 - 희망의 버스, 한진중공업지회 김진숙

20110611-12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지브크레인 아래.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오긴 왔군요. 이런 해방감들이 얼마만입니까.

8년전 김주익이 한 달 넘게 봉쇄된 공장이 마침내 뚫려 사람들이 이 85호 크레인 밑에 모이던 날 그 소 같은 사람이 울었습니다. 그랬던 사람을 우리는 끝내 못 지켰습니다.  

어제 용역들에게 공장문들이 차례차례 무너지는 걸 보면서 볼트 한가마니를 올렸습니다. 저 혼자 남게 되더라도 끝까지 싸울 생각이었습니다. 많이 보고 싶었고 애타게 기다린 만큼 만나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오작교가 되어 등허리가 다 벗겨지더라도 우리 조합원들과 여러분들 꼭 만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조합원들 많이 다치고 귀때기 새파란 용역아이들한테 내동댕이쳐지고 짓밟히는 걸 전 여기서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습니다. 6개월을 집에도 못가고 불면의 밤들을 술로 견디며 깨진 어항에서 흘러나온 금붕어처럼 숨을 헐떡거리던 저 사람들에게 우리가 외롭지 않음을 우리의 싸움이 정당한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조합원들 한번 봐주십시오. 평생 일한 직장에서 아무 잘못 없이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퇴거압력에 손해배상 가압류에 경찰서 몇 번씩 불려 다니고 가족들 성화까지 견뎌가며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저 지친 어깨에 가족들 생계를 걸머지고 밤엔 절망으로 쓰러지고 아침이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희망을 찾아 기를 쓰고 버텨온 사람들입니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가 목숨 던져 지켜낸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나를 버린다 해도 나는 저들을 버릴 수 없는 이유가 백 가지도 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우리 조합원들이 혁명적 투지로 무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키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6개월 전까지 살아왔던 삶을 지켜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저녁이면 땀 냄새 풍기며 집에 돌아가 새끼들 끼고 저녁 먹고 여러분들이 오늘까지 누려왔던 그 소박한 일상들을 지켜내고 싶은 것 뿐입니다.  

술만 먹으면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저 못나빠진 사람들. 가슴 속 맺힌 한을 이제 그만 풀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8년을 냉방에서 살았던 저의 죄책감도 이제는 좀 덜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이 85호 크레인을 생각하셨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조합원들을 기억해주십시오. 2003년 그 모질었던 장례투쟁의 와중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현서, 다림의 애비, 고지훈, 김갑렬을 기억해주십시오. 짤린 동생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함께 싸우는 최승철을 기억해주십시오. 말기 암으로 언제 운명하실지 모르는 아버지보다 동료를 지키기 위해 농성장을 지키는 박태준을 기억해주십시오. 비해고자임에도 이 크레인을 지키고 있는 한상철, 안형백을 기억해주십시오.  

정리해고로 무너지고 용역깡패에게 짓밟힌 저 사람들을... 조남호가 버리고, 언론이 버리고, 정치가 버린 저 사람들을 함께 지켜주십시오. 

백기완 선생님, 문정현 신부님, 박창수 동지 아버님, 박종철 동지 아버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을 만큼 뜨겁게 고마운 여러분. 제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비틀거릴 때마다 천수보살의 손으로 제 등을 받쳐주신 여러분. 꼭 이기겠습니다. 157일 아닌 1,570일을 견뎌서라도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 여기까지 왔던 그 마음 그대로, 아흔 아홉 번 쓰러져도 결코 무릎 꿇을 수 없었던 그 마음 그대로, 굳건히 지켜내겠습니다. 

기륭전자 동지들이 버텨왔듯이, 쌍차 동지들이, 유성 동지들이 버텨가고 있듯이, 그렇게 꿋꿋이 견뎌 나가겠습니다.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에게 감염된 인사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2011년 6월 12일 새벽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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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85호 지브 크레인 중간, 이용대 한진중공업지회 대의원

20110110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이용대 대의원은 김진숙 지도위원과 같은 파트 동료였다. 벌써 이십 수 년 전 이야기다. 그 동료를 위해 85호 지브 크레인 중간에서 그를 지키고 있다. 그가 김주익 전 지회장처럼 죽어서 내려오지 못하도록, 살아서 걸어내려올 수 있도록 지키고 있다. 밥을 올려주고 고구마를 올려주고 소식을 올려주고 있다. 1월 6일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오른 뒤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날마다 김 지도위원이 잠에 들 때까지 이 자리를 지킨다. "내만 찾아싼다"라고 불평하지만, 금새 "여기 있는 게 내 맘이 편하다"라고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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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20110110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1월 6일 새벽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85호 지브 크레인에 올랐다. 2003년 김주익 당시 한진중공업지회장이 구조조정 중단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129일 동안 농성하다 목을 매고 자결한 장소다.  1월 12일 한진중공업 사측은 290명 정리해고 명단을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 신청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남긴 글]

1월 3일 아침, 침낭도 아니고 이불을 들고 출근하시는 아저씨를 봤습니다.
새해 첫 출근날 노숙농성을 해야 하는 아저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 겨울 시청광장 찬바닥에서 밤을 지새운다는 가장에게 이불보따리를 싸줬던
마누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살고 싶은 겁니다. 다들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남고 싶은 겁니다.
지난 2월 26일. 구조조정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이후 한진에선 3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짤렸고, 설계실이 폐쇄됐고, 울산공장이 폐쇄됐고,
다대포도 곧 그럴 것이고,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강제휴직 당했습니다.
명퇴압박에 시달리던 박범수, 손규열 두 분이 같은 사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400명을 또 짜르겠답니다. 하청까지 천 명이 넘게 짤리겠지요.
흑자기업 한진중공업에서 채 1년도 안 된 시간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그 파리목숨들을 안주삼아 회장님과 아드님은 배당금 176억으로
질펀한 잔치를 벌이셨습니다. 정리해고 발표 다음 날.

2003년에도 사측이 노사합의를 어기는 바람에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여기 또 한마리의 파리목숨이 불나방처럼 크레인 위로 기어오릅니다.
스물 한 살에 입사한 이후 한진과 참 질긴 악연을 이어왔습니다.
스물 여섯에 해고되고 대공분실 세 번 끌려갔다 오고, 징역 두 번 갔다 오고,
수배생활 5년 하고, 부산시내 경찰서 다 다녀보고, 청춘이 그렇게 흘러가고
쉰 두 살이 됐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 생각했는데 가장 큰 고비가 남았네요.
평범치 못한 삶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결단을 앞두고 가장 많이 번민했습니다. 85호 크레인의 의미를 알기에...
지난 1년. 앉아도 바늘방석이었고 누워도 가시이불 이었습니다.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 앉아야 했던 불면의 밤들.
이렇게 조합원들 짤려나가는 거 눈뜨고 볼 수만은 없는 거 아닙니까.
우리 조합원들 운명이 뻔한데 앉아서 당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정면으로 붙어야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한진조합원들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걸 다해서 우리 조합원들 지킬 겁니다.
쌍용차는 옥쇄파업 때문에 분열된 게 아니라 명단이 발표되고 난 이후
산자 죽은자로 갈라져 투쟁이 힘들어진 겁니다.

지난 일요일.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보일러를 켰습니다.
양말을 신고도 발이 시려웠는데 바닥이 참 따뜻했습니다.
따뜻한 방바닥을 두고 나서는 일도 이리 막막하고 아까운데
주익 씨는..  재규형은 얼마나 밟히는 것도 많고 아까운 것도 많았을까요.
목이 메이게 부르고 또 불러보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                        
                                                                            --- 김진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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