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81 - 고 한광호 유성기업 노동자 분향소









20160405 서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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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송전탑 반대 주민 녹색당 집단 입당 및 지지 선언, 고 한광호 열사 분향소















20160331 광화문광장, 서울광장


밀양 할매 할배들이 녹색당원이 되었습니다!

녹색당과 함께 송전탑을 뽑아내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다시 세웁시다!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 녹색당 집단 입당 및 지지선언 기자회견문

 

저희는 오늘 아침 6시에 밀양을 출발해서 이곳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밀양송전탑 투쟁을 하면서 아마도 수십번, 새벽에 모여 이렇게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다녀야 했습니다.

 

국회, 청와대, 한전 본사, 전북 군산, 충남 당진, 강원 횡성, 전남 나주, 부산 기장, 경북 영덕, 제주 강정, 그리고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전국 곳곳의 투쟁 현장으로, 정말 안 가본 데 없이 다 다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녹색당 당원으로 가입하고, 녹색당을 지지하는 선언을 하기 위해 이곳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이것은 지난 2012년 1월, 故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 자결하신 후로부터 지난 4년의 세월동안 이루어진 전국의 수많은 녹색당원들과의 아주 질기고 깊은 연대가 만들어낸 어떤 ‘필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2012년 3월 18일, 1차 탈핵희망버스에 연산홍 묘목을 들고 부북면 평밭마을로 올라온 수십명의 녹색당원들. 할매들의 이야기 들으며 눈물지으시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우리는 그날 129번 철탑 부지, 한전 놈들이 이치우 어르신께서 분신하실 때까지 우리 할머니들을 괴롭히며 나무를 베어낸 바로 그 자리에 꽃나무를 심었습니다. 지난 4년간, 녹색당원들은 도시락을 싸서 함께 농성장을 지키는 연대로, 카메라를 들고 영상으로 기록하는 미디어 활동으로, 경찰 검찰 조사 때 동행하고 법정에서 우리를 위해 변론하는 법률 지원으로, 경찰의 못된 짓거리를 감시하고 항의하는 인권 침해 감시단으로, 침을 놓고 약을 처방해 주는 의료 지원으로, 굽이굽이 한 서린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구술 기록으로, 그리고 현장 투쟁 때 함께 경찰에 손목과 팔목을 비틀려 끌려나가며 그렇게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할매 할배들은 이 고마운 전국 곳곳의 녹색당원들의 연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녹색당원이 되었습니다.

 

지난 10년 세월, 우리는 최선을 다해 싸웠습니다. 조금의 후회도 없습니다. 비록, 한전의 더러운 돈과 공권력의 힘으로 철탑이 들어섰지만, 우리는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녹색당원으로 9천명의 녹색당원들과 연대하여 이 땅의 힘없고 약한 사람들, 우리처럼 고통받고 괴로운 싸움을 하는 이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고, 탈핵 탈송전탑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이 나라의 에너지 정책을 반드시 정의롭게 고쳐 놓겠습니다.

신혼여행을 밀양으로 찾아온 젊은 가수 김영준 후보님, 청도 삼평리 할매들의 희망 변홍철 후보님, 1차 탈핵 희망버스에서 할매들과 함께 춤추던 이유진 위원장님, 이치우 어르신 분신하시고 곧장 달려오신 하승수 위원장님, 밀양 할매들을 생각하며 눈물 지으시던 과천의 홍지숙 후보님,

 

127번에서 함께 먹고 잤던 구자상 후보님, 희망버스에 함께 타고 온 기본소득 김주온 후보님, 밀양송전탑 전문가협의체 때 밤새 우리 발표문 다듬어주시던 신지예 후보님, 우리 밀양 할매할배들을 대신해서 출마한 이계삼 후보님, 군산에 연대갔을 때 함께 카메라 들고 싸워주시던 황윤 후보님, 그리고 자랑스러운 녹색당 9천명 당원 여러분!

 

이 열 분이 다 당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세상이 히뜩 뒤집힐 것입니다. 철탑도 단박에 뽑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게 어렵다면 녹색당 국회의원 딱 1명이라도 한번 국회에 들여보냅시다. 그러면 우리 밀양 할매 할배들과 9천명 녹색당원이 뒤따라 들어가서 국회를 뒤집어 놓겠습니다.

 

이번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반드시 승리합시다!

그래서 이제 탈핵탈송전탑과 이 나라의 민주주의의 역사를 우리가 새로 써 봅시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2016년 3월 31일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녹색당원 28명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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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500 - 이정훈 유성기업 영동지회장 고공농성 해제



20140628 충북 옥천. 고공농성 259일차.


‘우리’와 이어져 있는 유성 투쟁


여느 싸움과 마찬가지로, 2011년 5월 18일 무렵 알려지기 시작한 유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여러 굵직한 싸움들 속에 있었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 올라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지켜내려고 그해 6월 ‘희망버스’가 맨 처음 출발하기 전부터 혼자 혹은 파견미술팀으로 크레인에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던 때였다. 쌍용자동차는 어떤가. 새해가 되자마자 열두 번째 죽음을 시작으로 계속 죽음이 이어지는 바람에 그 죽음의 행렬을 끊기 위해 발버둥 치던 때였다.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이 먹튀자본에 맞서 상경해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던 때였고,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들은 집단 삭발 뒤 1,200일이 넘도록 싸우고 있던 때였다. 2005년부터 사진으로 담던 기륭전자분회 노동자들도 여전히 다른 투쟁사업장들과 연대하며 싸우고 있었고, 지금 주목 받고 있는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도 거대자본에 맞서 힘겹지만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 밖에 가보지 않은 수많은 곳에서 정리해고 문제, 비정규직 문제, 온갖 사회문제들이 넘쳐나던 때 유성 싸움이 하나 더 생겼다. 


마음과는 달리 모든 현장을 가볼 수는 없다. 모든 현장을 가보고 싶은 것도 아니다. 5월 18일의 용역폭력이 터지고 며칠 뒤 아산의 유성기업에 처음 가보긴 했지만, 그 뒤로 좀처럼 갈 틈을 내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멀리서 바라보던 중 쌍용차 결의대회에 참석했다가 억지로 다시 들르게 된 것은 홍종인 지회장의 고공농성 때문이었다.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데 고공농성만한 것은 별로 없다. 현장의 사진들을 몇 년 찍다가 돌아보니 어느새 온갖 고공농성 사진이 쌓인 것을 문득 생각하게 된 뒤부터 이 마음 불편한 사진들은 그리고 현장들은 챙길 수 있는 대로 챙겨보자는 심정으로 찍었고 유성 역시 마찬가지 현장이 되어 있었다. 홍종인 지회장이 151일 만에 2013년 3월 20일 굴다리에서 내려오고 반 년 만에 다시 충북 영동공장 이정훈 지회장과 옥천의 광고탑 고공농성에 돌입했을 때 찾아갔던 것도 그것이 다른 투쟁이 아닌 고공농성이기 때문이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고공농성이 아니었으면 옥천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서울의 사진쟁이 조차 오게끔 만들기 때문에 고공농성을 하는 것이 아닐까. 자본에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모르겠으나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졸아붙게 만드는 데는 효과적인 방법임이 분명하다.


누군가 하늘로 오르면 생존을 위해 이어지는 ‘생명줄’의 모습에도 관심이 가고, 끼니를 마련하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올라간 이들이 외롭지 않게 뭔가를 끊임없이 조직하며 노심초사하는 땅의 사람들에도 관심이 가고, 그러다가 하늘 아래를 지키며 한뎃잠을 자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관심이 가는 것이 고공농성이다. 반 년 만에 두 번이나 하늘로 오른 곳이 아니었다면 유성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고공농성이 아니었어도 결국 유성에 갔을 것이다.

한진중공업에 희망버스가 다녀간 여름, 한진 노동자들의 가족들을 만나 서로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출발한 ‘희망열차’에서 쌍용차 가족들과 더불어 유성 가족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2013년 5월 10일 송전탑 고공농성을 벌이다 171일 만에 내려온 쌍용차 해고자들을 맞이하는 인파 속에서 자신도 비좁은 굴다리 농성장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다 건강 악화로 내려온 홍종인 지회장이 목발을 짚고 서 있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무덥던 여름날 밤, 쌍용차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차려진 대한문 앞 한쪽에서 올빼미가 그려진 단체복을 입고 공동 투쟁하는 유성 노동자들을 봤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문제는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구술사를 엮은 책 『밀양을 살다』에서 단장면 용회마을의 구미현 님도 이렇게 말한다.

“내 혼자 무심히 살 수는 없구나. 사회의 끈은 어떻게든 엮여서 이 송전탑 줄을 따라서 내한테 또 따라왔어요. 송전탑 문제가 어디 이 전기 한 가지 문제입니까. 모든 사회문제가 완전히 종합돼서 나타내지는 거 아닙니까.”

‘사회적 합의’ 전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던 기륭전자분회의 농성장 앞에 있으면 경북 구미의 한국합섬, 코오롱 노동자들을, 전남 순천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인천의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콜트콜텍 해고자들을, 강원도 옥계의 라파즈-한라 노동자들을, 울산·전주·아산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경기도 화성의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을, 하이텍알씨디 노동자들을, 주연테크 노동자들을, 철거민과 노점상들을, 코레일 승무원들을, 학습지 노동자들을, 종교인들을, 학생들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연대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까닭이 구미현 님의 말 속에 담겨 있다. ‘희망’이란 이름을 붙인 버스, 열차, 여객선, 비행기가 한진중공업으로 강정으로 밀양으로 유성으로 떠났던 까닭도 여기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유성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지 않았다면 가보지 않았을 테지만, 동시에 다른 어떤 방식의 투쟁을 했든지 간에 그것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싸우는 우리의 문제와 이어져 있다면 함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정훈 영동지회장이 240일이 넘도록 옥천 광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했건만 하늘로 오른 사람들이 발 디딘 곳만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이 불편함이라니... 건강하고 당당하게 내려오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기를 바랄 뿐.


『우리, 노동자로 살아가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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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85 - 유성 희망버스


20140315 충남 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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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64 - 홍종인·이정훈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장 고공농성 27, 28일차
















20131108-09 충북 옥천IC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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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463 - 홍종인·이정훈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장 고공농성 19일차























201311031 충북 옥천IC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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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349 - 홍종인 유성기업 아산지회장

 

 

 

 

20130228 충남 아산 유성기업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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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엽 작가

20110727 충남 아산 유성기업 앞.

파견미술팀 이윤엽 작가와 홤께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비닐하우스 숙소 지붕에 여름을 시원하게 날 미술작업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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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89 - 시대의 모순, 노동자

20110601 서울 충정로 프랑스대사관 건너편.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연대촛불문화제.

잘 보면 이 시대의 모순이 모여 있다. 쌍용자동차, 재능교육, 발레오공조, 기륭전자, 유성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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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087 - 금속노조 충남지부 유성지회

20110523 충남 아산 유성기업.

5월 24일자 한겨레, 경향 1면 하단 광고는 실망스럽다.

오늘 공권력 투입에는 한겨레, 경향도 한 몫씩들 했다.

■ '유성기업 사태' 언론 보도, 기자에게 영혼이 없다[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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