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 (1929.12.30-2011.9.3)


당신의 죽음을 울지 않습니다 -이소선씨 별세에 부쳐

                                                                                                                    고은

이 세상에 종결은 없습니다
그토록 꿈꾸던
그토록 싸우면서 찾던
다른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꿈도
당신이 한번 더 살아볼 세상도
아직껏 종결이 없듯이
이 세상에 종결은 없습니다

이렇게 당신이 눈 감기 전부터
당신 이후의 후유증이 와버렸습니다
눈 뜬 자
귀 펑 뚫린 자들이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가슴 칩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시대를 종결없이 다했습니다
엉엉 울고 싶어도
팍팍한 하늘 밑에서
울음이 막히고 맙니다
슬픔이라면
오직 목구멍의 먹먹한 어둠입니다
언제나 찾아가던 당신
언제나 찾아오던 당신
언제나 거기 가면
가장 먼저 와 있던 당신이
이로부터 어디에도 없게 되다니
이게 무슨 노릇입니까

이소선 어머니
당신의 죽음을 울지 않습니다

저 먹통같은 시대 또는 개같은 시대에
생짜로 아들을 묻은 어머니로부터
그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내내
바람쳐대는 땅 위의 어머니였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한 아들의 어머니이자
한 아들의 무덤인 어머니이자
세상의 뭇 아들의 뭇 어머니로
뼈 앓으며 살 쓰라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아닙니다
당신은 누구에게는 혈육이었고
누구에게는 동지이고
누구에게는 호박넝쿨 울타리이고
누구에게는 심연이었습니다

거듭 말합니다
당신은 당신 아들 이후의 아들이었고
당신 아들의 어머니 이후
세상의 동서남북 떠도는 어머니였습니다
거기 얼어붙은 평화시장 아스팔트 바닥
그 겨울 이래
당신의 고통은 기어이 불타올라
기어이 영광의 고통이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누워 있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서 있지 않았습니다
늘 숨차오르며 걸었습니다 내달렸습니다

사람이 사람 아닌 때로부터
당신의 언어는
사람이 사람일 때를 위하여
반생애의 미래 다 바쳐
시퍼런 달밤의 언어였습니다
어제는 위로였고
오늘은 독전(督戰)이었습니다
한번 입을 열면
시작도 끝도 없이
진진한 옛 이야기 같은
오늘 하루의 이야기보따리 보고서였습니다
사람이 사람이기를
새벽같이
저녁같이 부르짖는
그 불덩어리 그때 이래
노동자가
노동자일 때
닭장 아니고 돼지우리 아니고
사람이 두번 세번 사람일 때
그때를 가슴에 담고
빈 몸으로 나아가는 길고 긴 행로였습니다

폭염의 세월이었습니다
혹한의 세월이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아들을 바친 뒤
그 고통의 꼭대기에서 내팽개쳐진 이래
그럴수록 당신은
조상과 자손의 산천초목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아들의 생모로
만인의 성모로
여기도 저기도 마다 않고
몇 10년 입은 헌 옷차림으로 와 있었습니다

그런 10년 동안
또 10년 동안
또 10년
또 10년 동안
어느 골짝인들 거르지 않고
바느질로 촘촘히 챙기고
어느 비탈인들
사방풍 안고 파도치는 어머니였습니다
고려의 어머니였습니다
동방의 어머니였습니다
누군가 약해지면 다그쳐
강한 누구이기를
누군가 물러서면 밀어올려
앞장서는 누구이기를
그러는 동안
언제 어디
당신은 마음 푸짐한 밥상이고
질펀한 밭두렁 논두렁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몇백만의 당신으로
몇백대(代)의 당신으로 섬기는
내일의 추모를 해마다 바칠 것입니다
당신의 이름 이소선을
우리의 속삭임으로 삼고
우리의 포효로 삼겠습니다
당신의 이름 이소선을
마침내 우리 역사에서
버젓이
버젓이
일으켜 세우겠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80년을
우리 현대사 시간 속에 응결시킬 것입니다
가소서 가시는듯 오소서

■ “힘내세요…죽지 마세요…하나가 되면 삽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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