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소통의 작업: 신자유주의 거리를 배회하는 마르크스의 유령들」

「기록과 소통의 작업: 신자유주의 거리를 배회하는 마르크스의 유령들」

 

이광석 - 사이방가르드저자 · 평론가 ·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사진은 기록의 매체라 한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란 괴물이 삼켜버린 대한민국에서 사진은 어떠해야 하는가? 권력의 칼바람이 몰아치고 ‘꼼수’들이 판치는 현실에서 사진은 그 피울음과 허상을 담아야 한다. 커다랗게 멍들고 좌절에 신음하며 미래를 상실한 이들의 모습을 기록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거리를 배회한다면 그 질곡의 현실을 『자본』 부록으로 재집필했을 것이다.

 
누구보다 사회과학자들이 해야 할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불러들이는 일에 사진작가들이 나섰다. 우리의 생채기 난 현실을 기록하는데, 르포 사진가인 이상엽, 포토저널리스트 정택용,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현린과 홍진훤이 뭉쳤다. 이상엽은 4대강과 도시 재개발의 폭력성을, 정택용은 오랜 기간 기륭전자와 쌍용차 노동자의 힘겨운 싸움을, 현린은 평택 미군기지와 촛불집회를, 홍진훤은 용산참사의 현장을 사진 속에 담아왔다. 이들 네 명은 사진계에서 이미 마르크스의 유령을 불러들이는 주술사들로 통한다. 힘없는 이들의 한복판에서 사진을 통해 리얼리즘의 미학적 실천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번 「TAKE LEFT」는 바로 이들 주술사들이 벌이는 마르크스를 귀환하는 작업에 해당한다.

 
사진의 기록은 감흥과 소통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TAKE LEFT」는 기록을 나누고 공유하는 미학적 작업이란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들 넷의 전위적 작업들이 전시의 중심 테마이지만, 직업적 사진작가가 아니더라도 아마추어 누리꾼들도 기록의 작업에 함께 참여하고 감흥의 기록을 남길 수 있다. 새로운 사진의 소통 방식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주술사들은 네이버, 페이스북, 플리커, 트위터 등에 누리꾼들의 공동작업을 위한 소통의 공간을 마련했다. 누리꾼들의 참여도에 따라 ‘빨간책’ 증정이란 유인 아닌 유인책을 통해 누리꾼들의 사진 공모를 몇 차례 걸쳐 진행했다. 또한 공유나 펌, 사진 전시에 관한 설문 공모들을 통해 이들은 자신을 닮은 더 많은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만들어낸다.

 
한국 사회를 집어삼킨 신자유주의란 괴물에 맞서 오늘날 마르크스의 유령들이 벌이는 투쟁은 새롭고 신선하다. 전시기획 「TAKE LEFT」가 취했던 대중 소통의 방식은 이 점에서 특별하다. 먼저 최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전시기획의 프로모션과 누리꾼 참여를 이끌었다. 들불과 같이 퍼지는 소셜미디어 내 정보 파급력이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되살리는 작업에 효과적이었다. 둘째, 단순히 전시공간을 통한 보여주기가 아닌 전문작가와 일반인의 공동작업과 해우를 통한 마르크스의 유령 복원이 이뤄진다. 전시 기획의 제안은 전문 사진작가들에 의해 이뤄지나, 나머지 작품들은 아마추어 누리꾼들의 공모작을 통해 충원되었다. 산개한 아마추어리즘과 이의 문제의식을 전문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만나는 중요한 장으로 전시기획을 활용한다. 셋째, 대중과 전문 사진작가들이 함께 마르크스의 유령에 대한 사진 아카이브 즉 기록 작업을 수행하며 현대 한국사회의 문제에 대해 공감하는 장으로써 그 기획의 참신성이 엿보인다.

 
카메라를 메고 나타난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우리는 전문작가와 누리꾼을 연결하는 기록과 소통의 네트워크를 볼 수 있고 신자유주의에 의해 피폐화된 서울과 대한민국 거리 곳곳을 볼 수 있다. 「TAKE LEFT」를 통해 마르크스의 유령들이 출현한 이유는 단순히 사진을 통해 기록과 소통의 미학 작업을 추구하는 것에 국한되진 않아 보인다. 오히려 이번 전시기획의 의미는 마르크스의 유령들로부터 정념을 받아 지배의 전략을 벗어난 저 다른 곳, 이상향을 공유하는 저항과 연대의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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