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사람의 일인가 (「삶이 보이는 창」 92호)

이게 사람의 일인가




1.

3월 3일 오전 한 방화범이 지저분하다며 대한문 분향소 농성천막에 불을 질렀다. 다음날 찾아간 화재현장 잿더미 속에서 타다 만 이 엽서를 발견했다. 작년 5월 24일 대한문 분향소가 철거되고 다시 천막을 설치하려다가 몸싸움이 일어난 뒤 누군가 짓밟힌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을 찍었다. 그 사진이 엽서가 됐고 불에 탄 엽서를 다시 사진에 담았다.




2.

불에 탄 쓰레기들을 실어가기 위해 중구청 청소차가 왔다. 그 빈자리에 다시 천막을 치지 못하게 하려고 중구청 철거반원들이 대형 화분들을 설치하려고 해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졌다. 어둠 속에서 청소차 점멸등이 분노한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의 얼굴을 비춘다.




3.

하나 남은 분향소 천막을 철거하고 화단을 만들기 위해 중구청이 트럭에 싣고 온 흙을 쏟아 부었다. 24명의 죽음을 추모하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이것을 보고 무엇을 느꼈겠는가. 무덤이었다. 이게 사람의 일인가 싶다. 모르겠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그들의 머릿속을. 이런 나라라면 매우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더 큰 문제다.




4.

아수라장을 백기완 선생님이 보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화단 끝에 주저앉아 어떻게든 버텨보려던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 유명자의 뒷덜미를 잡아채던 경찰이나 평탄화 작업하면서 일부러 사람들한테 흙을 뿌려대던 중구청 직원인지 용역인지가 하는 짓거리에 분노하는 수밖에.




5.

이렇게 만들기 위해 사람들 마음에 대못을 박았나. 이곳의 꽃과 나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사람들은 아름답지 않다고 한다. 여기가 어디라구. 중구청에 맞서 싸우며 “여기가 어디라구!”라고 외쳤다던 한 노동자의 벌개진 눈을 어떻게 위로할 건가.




6.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난 작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간의 본성에 따르면 슬픔과 아픔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겪더라도 우리의 의식 속에서 전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원근법에 따라 앞의 것이 크고 뒤의 것이 작다. 이것은 신의 섭리이며, 그래서 우리가 수용소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그래서 버틸 수 있는 것이구나. 그들이 겪는 슬픔과 아픔이 모두 더해졌더라면 어땠을까. 정말 신의 섭리라면 신께 고마워할 일이다. 




7.

다시 프리모 레비의 말이다.

 

이상하게도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이, 어쩌면 아주 보잘것없을 수도 있는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절망의 문턱을 넘지 않도록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준다.

 

철거 전 우리는 매주 농성장을 가꾸기 위해 모였다. 한진 노동자들의 작업화에 꽃을 심은 것처럼. 돌이켜보니 그런 것이 작은 일이 아니었다. 절망의 문턱을 넘지 않도록 해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연대’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격월간 「삶이 보이는 창」 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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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김정대 신부

20101211 인천 부평. 노동자 쉼터 '삶이 보이는 창'

'부치지 않은 편지'에서 '남행열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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