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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1932.10.8~20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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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장례의식 없이 ‘다비’만/ 법정스님 입적…‘무소유’ 실천 [불교신문 2010.3.11]

서울 길상사 전 회주 법정스님이 오늘(3월11일) 오후1시51분 송광사 서울분원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79세, 법랍 56세. 법정스님의 법구는 현재 서울 길상사에 안치돼 있으며, 오는 13일 오전11시 조계총림 송광사 다비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다비식 이외에는 일체의 장례의식을 거행하지 않는다. 
 
3월13일 오전11시 송광사서 다비

법정스님은 대표적인 저서인 <무소유>를 몸소 실천해 세간을 더욱 숙연하게 하고 있다. 법정스님 다비준비위원회 대변인 진화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은 오늘(3월11일)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법정스님의 유지를 전했다.
 
법정스님은 지난 10일 밤 입적을 예감한 듯 상좌에게 당부의 말씀을 남겼다.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또 스님은 머리맡에 남아 있는 책을 스님에게 신문을 배달한 사람에게 전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법정스님은 40여년 전인 지난 1976년 발간된 <무소유>에서 약속한 바를 지킨 것이다.
 
진화스님은 법정스님이 평소 당부했던 유지를 받드는 차원에서 일체의 장례 의식을 거행하지 않고, 스님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저서들을 출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법정스님은 “그동안 풀어 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며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또 “번거롭고 부질없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수고만 끼치는 일체의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며,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해 주고,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고 상좌들에게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송광사에서 거행되는 스님의 장례의식은 영결식 등 일체의 의식 없이 다비만 진행된다. 또 “조화나 부의금도 접수하지 않는다”고 진화스님은 밝혔다. 
 
장례의식은 없지만 스님의 가는 길을 안타까워하는 추모객들을 위해 길상사와 송광사, 불일암에 간단한 분향소가 마련됐다. 법정스님의 송광사 운구 일정 등 향후 계획은 오늘 저녁쯤 따로 발표될 예정이다. 진화스님은 “송광사에서 스님들이 상경하는 중”이라며 “송광사와 문도 스님들과 협의해 구체적인 일정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법정스님은 1932년 10월8일 전남 해남군에서 출생했다. 1954년 효봉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고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으며, 해인사에서 강원 대교과를 수료했다.

법정 스님께 - 이해인 수녀

언제 한번 스님을 꼭 뵈어야겠다고 벼르는 사이 저도 많이 아프게 되었고 스님도 많이 편찮으시다더니 기어이 이렇게 먼저 먼 길을 떠나셨네요.

2월 중순, 스님의 조카스님으로부터 스님께서 많이 야위셨다는 말씀을 듣고 제 슬픔은 한층 더 깊고 무거워졌더랬습니다. 평소에 스님을 직접 뵙진 못해도 스님의 청정한 글들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큰 기쁨을 누렸는지요!

우리나라 온 국민이 다 스님의 글로 위로 받고 평화를 누리며 행복해했습니다. 웬만한 집에는 다 스님의 책이 꽂혀 있고 개인적 친분이 있는 분들은 스님의 글씨를 표구하여 걸어놓곤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스님의 그 모습을 뵐 수 없음을,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야단맞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에게 오라'고 하시던 스님.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대조'한 지 꽤나 오래되었다고 하시던 스님. 때로는 다정한 삼촌처럼, 때로는 엄격한 오라버님처럼 늘 제 곁에 가까이 계셨던 스님.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수행자라지만 이별의 인간적인 슬픔은 감당이 잘 안 되네요. 어떤 말로도 마음의 빛깔을 표현하기 힘드네요.

사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워 편지도 안 하고 뵐 수 있는 기회도 일부러 피하면서 살았던 저입니다. 아주 오래전 고 정채봉 님과의 TV 대담에서 스님은 '어느 산길에서 만난 한 수녀님'이 잠시 마음을 흔들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고백을 하신 일이 있었지요. 전 그 시절 스님을 알지도 못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수녀님 아니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불자들도 있었고 암튼 저로서는 억울한 오해를 더러 받았답니다.

1977년 여름 스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구름모음 그림책도 다시 들여다봅니다. 오래전 스님과 함께 광안리 바닷가에서 조가비를 줍던 기억도, 단감 20개를 사 들고 저의 언니 수녀님이 계신 가르멜수녀원을 방문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어린왕자의 촌수로 따지면 우리는 친구입니다. '민들레의 영토'를 읽으신 스님의 편지를 받은 그 이후 우리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그저 물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담백하고도 아름답고 정겨운 도반이었습니다. 주로 자연과 음악과 좋은 책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나누는 벗이었습니다.

'…구름 수녀님 올해는 스님들이 많이 떠나는데 언젠가 내 차례도 올 것입니다.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이기 때문에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날그날 헛되이 살지 않으면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한밤중에 일어나(기침이 아니면 누가 이런 시각에 나를 깨워주겠어요) 벽에 기대어 얼음 풀린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이 자리가 곧 정토요 별천지임을 그때마다 고맙게 누립니다…'


2003년에 제게 주신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어쩌다 산으로 새 우표를 보내 드리면 마음이 푸른 하늘처럼 부풀어 오른다며 즐거워하셨지요. 바다가 그립다고 하셨지요. 수녀의 조촐한 정성을 늘 받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도 하셨습니다. 누군가 중간 역할을 잘못한 일로 제게 편지로 크게 역정을 내시어 저도 항의편지를 보냈더니 미안하다 하시며 그런 일을 통해 우리의 우정이 더 튼튼해지길 바란다고, 가까이 있으면 가볍게 안아주며 상처 받은 맘을 토닥이고 싶다고, 언제 같이 달맞이꽃 피는 모습을 보게 불일암에서 꼭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이젠 어디로 갈까요, 스님. 스님을 못 잊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자비의 하얀 연꽃으로 피어나십시오.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둥근달로 떠오르십시오.

■ 법정스님 "대운하 구상은 망령" [한겨레 2008.4.20]

추모특집 / ‘무소유 삶’ 법정스님 [불교신문 2010.3.13]

■ 불교신문으로 보는 법정스님 어록 [불교신문 2010.3.13]

■ "같은 하늘 아래에 있어 행복했습니다"/ 법정스님 다비 엄수 [불교신문 2010.3.13]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역시 이단아였다 [조현글방 20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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