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준'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년, 왜 다시 마르크스인가?」 2012.01.29

「2012년, 왜 다시 마르크스인가?」


2012, 왜 다시 마르크스인가?

 

강신준 - 『자본』 번역자 · 『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 저자 ·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해체와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는 한 역사적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마감된 시대에 묻혀 마르크스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회체제 그 자체를 문제로 삼는 거대담론은 한낱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고 거시적인 사회체제 대신 미시적인 개인의 일상이 문제가 되는 새로운 시대가 문을 열었다. 소위 포스트모던의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죽은 자가 산 자를 내쫓는” 마르크스의 잠언이 마르크스 자신에게서 실현될 줄이야. 2008년 세계공황이 발발하면서 포스트모던의 바람은 그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일시적 미풍에 불과한 것인지를 앙상하게 드러내었다. 아직도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벌써 3년을 넘기고 있는 공황은 미시적 일상의 분석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체제 그 자체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묘비명 뒤로 사라졌던 마르크스는 무덤에서 다시 걸어 나왔다. 공황을 일으킨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에 대한 분석은 한 세기가 지나도록 여전히 마르크스에게서만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마르크스는 다시 부활하였다. 마르크스에 대한 강의에 수강생들이 다시 몰려들고 그의 책은 판매가 급증하였다. 미국의 역사학자 해롤드 제임스의 선언대로 “마르크스 르네상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유독 한국만은 여기에서 예외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서는 엉뚱하게도 마르크스 대신 케인스가, 체제 변혁의 변증법 대신 윤리적인 정의가 사회적 이목을 끌고 있다. 어떻게 된 영문일까? 한국에는 부활할 마르크스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마르크스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87년 『자본』의 번역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곧이어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현실 사회주의가 와해되었다. 곧바로 포스트모던의 바람이 수입되었고 한국에서 마르크스의 바람은 채 불기도 전에 잦아들고 말았다. 학계는 물론이고 노동운동, 사회운동 어디에도 마르크스는 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아니 한 번도 자리를 잡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공황의 발발과 함께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마르크스의 바람이 한국에서는 비켜가고 있는 것이다. 공황과 함께 사회적 모순은 더욱 심화되었고 이에 대한 변화의 갈망은 터져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대안의 희망은 한국 사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촛불집회가, 용산참사가, 쌍용자동차가, 그리고 희망버스가 모두 참혹한 모순에 대한 변화의 갈망을 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대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마르크스가 고민하던 1848년 유럽의 상태를 그대로 닮아 있다. 변화의 갈망은 혁명에 담겼지만 거기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바로 과학적 지렛대가 그것이었다. 

 
마르크스의 역사적 위업은 바로 이 과학적 지렛대를 직접 제시했다는 점에 있고 그가 지난 천년 동안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절망이 어두운 까닭은 바로 이 과학적 지렛대, 마르크스의 부재 때문이다. 그래서 2012년 지금 한국에서 우리는 마르크스를 얘기해야 한다. 그것도 진지하게 얘기해야만 한다. 그것이, 그리고 그것만이 오늘 한국사회의 참혹한 절망에 희망의 빛을 열어줄 수 있는 과학적 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실린 사진들은 우리에게 그것을 알리고 있다. 바로 지금 한국이 마르크스를 필요로 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의 시대를 맞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