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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인의 상상력을 가두지 마라! 2011.11.25

시인의 상상력을 가두지 마라!


시인의 상상력을 가두지 마라! 시인의 양심을 구속하는 정부는 ‘나쁜 권력’이다!

- ‘희망버스’ 기획자 송경동 시인의 석방을 촉구하는 〈한국작가회의〉 성명서
 
 지난 18일 밤 부산지방법원은 한진중공업의 노사갈등과 관련해 ‘희망버스’ 행사를 기획하고 주도했다는 이유로 시인 송경동 씨에 대해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법방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등 다섯 가지 혐의를 적용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한국작가회의(이사장 구중서)는 시인 송경동 씨를 구속하는 정부, 곧 시인의 상상력을 억압하는 정부는 ‘나쁜 정부’일 수밖에 없으므로, 정부에 의한 그의 구속을 제대로 된 민주주의 하에서는 있을 수 없는 ‘문화폭압’으로 규정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한국작가회의는 시인 송경동 씨를 지금 당장 ‘무조건 석방하라’고 강력히 촉구한다. 시인의 양심과 상상력을 가두는 처사는 이른바 문화선진국을 자처하는 이 정권 스스로의 논리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다른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실질적인 침해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난 10여 년 동안은 양심과 상상력에 입각한 문인들의 행위가 정부의 실정법에 따라 구속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한국작가회의는 ‘희망버스’ 행사를 기획했다는 혐의로 시인 송경동 씨를 구속한 이 정권의 반(反)인권적 처사와 반(反)문화적 행태에 참담한 분노는 물론 참을 수 없는 연민을 금치 못한다. 레임덕의 상황에 직면해 저지르는 이 정권이 단말마적 비명에 어찌 우리가 분노와 여민의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자리를 빌려 우리는 시인 송경동 씨가 지난 15일 오후 7시 25분경 부산 영도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이틀 동안 경찰의 조사에 임하고 있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집행했으니 이러한 사법당국의 처사를 법의 목적을 사회의 평화에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순수한 법 감정을 제멋대로 훼손한 매우 부당한 처사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제 발로 찾아간 시인 송경동 씨를 도주 우려 운운하며 구속하는 것은 그의 양심을 한낱 파렴치범으로 간주하려는 태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이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희망버스’ 행사와 함께 했던 깨어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피플 파워’를 아무런 개념 없이 불법으로 매도하는 옹졸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시인이란 누구인가.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위험으로부터 피하는커녕 오히려 위험에 처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신을 향해 기도하고 외치는 존재가 아닌가. 시인은 앵무새처럼 국익(國益)을 말하는 정부 및 사용자의 ‘나쁜 말’에 맞서 국익보다 더 소중한 한 사람의 ‘생명’과, 노동자들이 마음껏 노동할 수 있는 ‘자유’와,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평화’를 깨우고 노래하는 존재가 아닌가. 바로 이러한 점에서 ‘희망버스’ 행사는 시인 송경동 씨이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었던 시민참여의 한바탕 축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가리켜 그가 꿈꾸고 열망해온 ‘재미를 위한 혁명’의 한 사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이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더라도 시인 송경동 씨를 구속하는 일은 시인의 양심과 상상력이 연출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만든 일종의 ‘행위예술을 국가권력이 앞장서 훼손해버리는 일이지 않을 수 없다.

한진중공업의 해고노동자 출신 김진숙 부산민주노총 지도위원 등이 309일 간 고공농성을 한 행위는 세계 노동운동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엄청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시인 송경동 씨가 시인의 양심과 상상력으로 기획하고, ‘노동하기 좋은 나라’ 및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염원하는 다수의 시민들이 참여해 만든 아름다운 연대에의 기적, 곧 ‘희망버스’ 행사 역시 세계 문화운동사에서 유례가 없는 엄청난 일이다. 하지만 정작 유래가 없는 엄청난 일은 김진숙 부산민주노총 지도위원에 의해 309일 간의 고공농성이 진행되는 동안 이 땅에서 살 권리를 박탈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아가 한진중공업 노사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한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약자에게 무례하고 무능한 이 정권의 진면목을 ‘희망버스’ 행사를 통해 여러 차례 적나라하게 목격을 한 바 있다. 물론 시인 송경동 씨 등의 노력에 의해 김진숙 지도위원을 비롯한 고공 농성자들이 35미터 크레인 위에서 무사히 내려온 일은 이미 국내외의 뜨거운 관심사가 되어 있지만 말이다.

이에 한국작가회의는 시인 송경동 씨의 구속을 더 나은 사회와 더 나은 문화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온 이 나라의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지니고 있는 양심과 상상력을 함부로 침해하고 간섭하는 ‘나쁜 권력’의 대표적인 문화검열 행위라고 규정한다. 어렵게 체결된 한진중공업 노사 간의 합의와, 그에 따른 화해의 정신을 단번에 부정해버리는 정부의 이러한 처사는 머잖아 우리사회 곳곳에 엄청난 갈등과 대립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이러한 면에서라도 한국작가회의는 시인 송경동 씨가 좀 더 빨리 그의 가족과 문학의 현장으로 복귀하기를 희망한다. 만일 즉각적인 석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시민들과 더불어, 그리고 국내외 저명한 문인들과 더불어 그의 즉각적인 석방을 위해 끝까지 연대하고 투쟁할 것임을 밝혀둔다.

오는 11월 22일(화)은 진작 시인 송경동 씨로 수상자가 결정된 [신동엽 창작상]의 시상식이 있는 날이다. 시인 송경동 씨는 시집 『꿀잠』,『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등의 시집을 통해 ‘시와 행동’이 일치하는 작품을 열정적으로 써온 이 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우리는 이날 시상식의 행사가 주인공이 없는 행사가 되지 않기를, 다시 말해 객(客)들의 잔치가 되지 않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이러한 이유에서라도 우리는 정부가 어떠한 조건이나 단서도 달지 말고 ‘지금 당장’ 시인 송경동 씨를 석방하라고 거듭 촉구한다.
 
2011년 11월 20일
(사)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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