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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죽음들, 나에겐 고스란히 빚입니다 2011.06.08

그 죽음들, 나에겐 고스란히 빚입니다


20110514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지브크레인 아래.

7회 ‘박종철인권상’을 수여하게 된 수상소감

시퍼런 청년을 열사로 부르는 일이 나는 아직도 낯설다. ‘인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박종철이 대공분실에서 죽어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건 내가 거기 다녀온 지 몇 달 후였다. 그의 죽음을 보면서 내가 다녀온 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이었는지 내가 겪은 일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었는지 비로소 실감났다.

그는 죽고, 그와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살아서 크레인에 오른 지 152일째. 선배의 이름을 불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시대. 죽음으로 역사가 된 청년의 이름을 우리는 6월 항쟁의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불렀다. 그 부름은 7,8,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고 전국 곳곳에서 하루 저녁에도 수 백 개의 노동조합이 세워지고 어용노조가 민주노조로 바뀌었다.

불량 냈다고 따귀 맞고 5분 지각했다고 하루 일당이 까이던, 손가락이 잘리고 다리가 부러져도, 심지어 사람이 죽어도 산재가 뭔지도 몰랐던 공순이 공돌이들이 노동자라는 본명을 쟁취했던 개명천지.

이 크레인에서 보는 바로 맞은편에 그의 집이 있었다. 선배와의 약속을 목숨처럼 여겼던 한 청년이 죽었고,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이 크레인에선 조합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끼들과의 약속을 어겼던 한 노동자가 죽었다. 그리고 그 죽음들이 고스란히 빚이 된 내가 다시 크레인에 올라 그의 집이 있던 자리를 내려다본다.

역사는 아직도 이렇게 가혹하다. 인연이 빚이 되고 죄가 되는 세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기 몫의 밭을 갈 뿐이다. 그렇게 돌을 골라내고 바위를 들어내며 황무지를 갈다보면 꽃도 되고 감자도 열고 고구마도 캘 날이 오려니 하는 믿음으로.

25년 전 한 청년이 쓰고자 했던 민주주의를 온 몸으로 써내려가는 우리조합원들에게 이 상이 위로가 되길 바라며 곳곳에서 싸우는 노동자, 청년학생들, 민중들의 하루하루가 박종철이 살고 싶었던 세상으로 이어지는 나날임을 되새기고자 한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2011년 6월 6일
크레인고공농성 152차 김진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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