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101 - 17번째 타살과 김정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

20111012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본사 앞.


추모사


                                                                                                                          권지영 가족대책위 대표


다 늦은 저녁 쓰레기를 버리려고 집에서 입고 있던 대로 반바지를 입은 채 밖으로 나갔습니다. 추웠어요. 밤바람이 너무 차다. 생각했습니다.

그 찬바람! 한밤중 새벽이 올 때까지 멍하니 켜진 컴퓨터 모니터를 보다...
자신의 휴대폰을 열어 거기에 적혀진 그동안 알고 지냈던 이들의 이름을 보다...
하나씩 하나씩 연락처를 삭제하고 찍었던 사진들을 지우고 통화했던 기억을 지웠다 했습니다.

몇 달동안 집밖에 나가지도... 누굴 만나지도...
면도도 않고 이발도 않고 그 청년은 무얼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 마음은 정말 온전히 발가벗겨진 채로 차가운 벌판에 홀로 서서 그 바람을 다 맞고 있었겠구나... 그랬겠구나...
이젠 돈도 없고... 다른 일을 할 자신도 없고...
동료들과 마지막까지 함께하지도 못했고... 회사는 다시 들어갈 기약도 없어 보이고...

뭘 하지?
뭘 할까?

수만 가지 상상과 이야기를 머릿속에서만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자기를 얼마나 미워하며 힘들어했을까? 이 아까운 청년이...
한참 회사가 차를 많이 만들어 팔던 그때,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을 한다고 모두들 신나던 그때 입사를 했대요.
주,야간 맞교대를 돌며 열심히 쇠판을 차에 갖다 붙이고 볼트를 조여 무쏘를 만들고 렉스턴을 만들었대요.
지금 계속 회사를 다녔으면 올해로 딱 10년차 노동자가 되었을 청년이에요.

세상에 딱 둘뿐인 가족,
엄마랑 둘이 살던 고 김철강 조합원.
아들이 회사서 그리 되고... 일도 안하고... 그냥 저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속이 상해도 내 새끼 나아지겠지, 저러다 좋아지겠지, 무슨 일이야 있겠냐 그러셨대요.

고인이 세상과 작별해야지 하던 날,
오랜 관절염으로 병원에 다녀와 약 한봉지 먹고 또 일 가는 엄마한테 ‘엄마 아픈데 일 좀 쉬어’ 했대요. ‘이눔의 자식, 니가 일을 안 하고 그러고 있으니 엄마라두 일을 해야지’ 그랬더니 그 착하고 순한 아들이 고개를 푹 숙이더래요.
미안하고 안쓰러워 ‘엄마 괜찮아, 안 아퍼, 괜찮아 철강아’ 고개를 숙이는 아들 모습이 맘에 짠해 그래서 김치도 볶아놓고 찌개도 끓여놓고 이것저것 반찬을 만들어 아들 밥 먹이려고 그렇게 해놓고 아들을 찾았는데... 그 아들이 그걸로 마지막이었어요.
이젠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을 수 없게 그걸로 마지막이었어요.

이렇게 사는 것도 힘들고 그렇다고 살 수 없는 것도 힘들고 길도 안 보이고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는 공장 밖으로 밀려난 수천의 노동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생각을 반복하며 살고 있겠지요.

알 수가 없어요. 내가 뭘 잘못한거 같지는 않은데...생각하면 울화통이 치밀고 억울해 죽겠는데...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는 거에요.
세상은 날마다 이런일 저런일이 생기며 저만치 가 있는데... 나만 계속 그 자리서 길을 못 찾고 동동거리는 불안한 느낌.

더듬이가 잘려버린 곤충처럼 갈피를 못 잡는 그 어지러운 마음.
정리해고자,징계해고자,무급휴직자,희망퇴직자, 각기 다 다른 이름으로 나뉘어져 누군갈 원망하고 싶고 그런 자신이 참으로 가치없고 형편없다 학대하는 생활의 연속.

해고되고 파업하고 그렇게 제 자릴 찾을 수 없이 나를 망가뜨리며 살아가는 수천의 사람들.아내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아이들이 가출을 반복하고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도 힘에 겹고 버거운 사람들.

누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수가 없어요.
'남편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게 몇 달이 된 거 같다. 담배조차 퇴근길에 사다줘야 핀다'는 아내의 걱정, 그런 걱정이 대단하게 큰 걱정거리도 되지 않은지 오래된 우리들 모습, 너나없이 다들 그러니까...다들 그렇게 힘드니까...
한 때 쌍용차를 다니며 집에서, 이웃에서, 고향에서 번듯한 직장인으로 인사하고 인사받던 건강하고 듬직하던 그들은 이렇게 쉽게 닿지 못하는 섬이 됩니다.

검은 밤바다속 비바람과 파도를 그냥 혼자 맞으며 조금씩 깍여져나가는 아무도 가지 못하는 버려진 섬.
이러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아무 일도 아닌 일상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무섭고도 지독한 상상이 자꾸 되풀이돼요. 아니 이미 우리 곁에 조용히 와 앉아있는 것은 아닌가?
희망없는 일상을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돌고 도는 바이러스 같은 죽음이 말이죠.
계속 이렇게 툭툭 꺾이는 청춘을 얼마나 더 봐야 하나? 이렇게 속 아린 추모사 같은 걸 얼마나 더 쓰고 읽어야 하나? 지난번에 말했어요. 이제 고인 앞에 두 번 다시 이런 죽음을 만들지 않는다 하는 다짐같은 거 않겠다고 이젠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없어야하니까...

그랬는데 채 몇 달 되지도 않아 또 같은 소리를 해요. 잘 모르겠습니다. 어찌해야 될지 어떤 방법을 찾아야 할지.
제발 이 시간이 끝나려면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저 회사가 답해줘야 할거 같은데... 회사가 어려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해결하고 싶으면 돈 갖고 와라. 이런 소리 하지 말고 계속 젊은 가장들이 청춘들이 죽는 걸 사는 것보다 쉽게 선택하는 나라가 아니게 하려면 회사가, 정부가 방법을 찾아줬으면...

정리해고가 시행되고 나서 여기저기 해고로 인한 다툼과 상처와 피해가 크다는 걸 지난 10년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면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좀 찾아내 줘야죠.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회사가 커지고 돈을 벌었으니, 그런 노동자들의 노동이 이 땅을 이렇게 키웠으니...
그러라고 정부가 있는거잖아요. 일하는 많은 사람이 살기 좋게 만들려고 정치도 있는 거라면서요. 우리는 지금껏 차고 넘치게 힘들었어요
.
죽지않고 기쁘게 일하면서 살 수 있게... 이 어리숙하게 순해빠진 이들이 행복하게 노동하며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주세요.
깜깜한 바다 한가운에 홀로 떠서 속으로 수천 번 눈물을 흘리고 닦기만을 반복하는 외로운 섬같은 이들에게 등대를 보여주세요.
동료를 또 이렇게 보낸다는 한없는 죄스러움까지 이들에게 보태어지라고 마시고 방법을 찾아주십시오. 그렇게 간절하게 바라는 것으로 또 다른 임무창이 강종완이 김철강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저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그저 그것이...

그렇게라도 여기 이렇게 서있는 우리가 고인께 좀 덜 미안할 수 있게...한없이 미안하고 또 안타깝지만 쌍용차 실직자들이 자기 스스로 저를 가두는 힘든 결정을 하지 않도록 어떻게든 버티고 서있겠습니다.
앳된 얼굴의 무표정한 영정사진속 젊은 청년이 그저 이젠 덜 괴로웠으면... 이젠 이것저것 힘겨웠던 삶의 짐들 다 내리고 그저 편안하세요.

잘자요...편안하게...
,
|  1  |